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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칭의 말(馬) 이야기 17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 d3388100@hanmail.net입력 : 2019년 02월 07일(목) 17:53

ⓒ 경북동부신문
고대에는 전쟁이 중요했고, 전쟁만큼 말 또한 아주 필요한 것이었다. 그 광대한 대륙에서의 전쟁에서 말이 필수이며 중요한 것이라는 것은 진시황의 병마용갱이나 중국 고대 배경의 영화를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중국의 많은 위인들은 자신의 말을 아꼈고 소중하게 생각했으며 심지어 그 말이 죽어서도 말에 대한 예를 표하곤 했다. 물론 중국 뿐 아니라 한국 외 다른 나라의 장수들도 자신의 말을 귀히 여긴 기록들이 보인다. 하지만 한국에는 장군들의 말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오늘은 중국 귀인들의 애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제나라 장수 몽념장군, 양귀비로 유명한 당나라 현종, 모택동 주석의 말사랑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몽념(蒙恬, 기원전 259年~210年, 山东省临沂市蒙阴县의 사람)장군은 현재 필자가 있는 산동성 린이시의 제나라 장수였는데, 그의 애마인 青花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한다. 青花馬는 대단히 멋졌지만 야성적이고 사나워서 사람이 근접하지 못하게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말에 올랐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건장한 체력의 승부욕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 말을 한번 타보고 싶어 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뛰어난 장군에게는 저마다 마치 신발처럼 그에게 꼭 맞는 말이 함께 한 것처럼 蒙恬이 青花馬에 올라타자 바로 함께 온 산을 뛰어다녔다. 말은 蒙恬을 떨어뜨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어, 기진맥진하도록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 후 蒙恬이 전쟁터를 다니는데,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고, 青花馬와 함께 황하 남쪽에 40여개의 성을 쌓았고 진나라의 변방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蒙恬이 환관에게 해를 입어 죽게 되었을 때 청화마도 슬퍼하며 그의 뒤를 따라 죽었다.
다음은 당나라 현종의 말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종은 누구보다 마무(馬舞)를 좋아했는데, 특히 당나라 때 마희(馬戲)는 아주 성대한 시기에 도달했으며, 특히 당현종과 양귀비는 여자 마무를 편애했다고 한다. 당나라 궁에는 남녀 마기예팀(馬伎隊)이 있었고 최대의 무마(舞馬)를 양육했다. 매년 8월 5일 전후에 마무가 절정이였는데, 근정루(勤政楼) 앞 무마장(舞馬場)에서는 마무가 밤새도록 열렸다. 오랜 훈련을 거친 말은 마음껏 춤을 출 수 있었는데, 말이 술잔을 입에 물고 황제께 술을 바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이를 직접 본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당나라 장회(章怀)태자의 무덤 중에서 발굴된 "馬球圖"는 말에 대한 각종 그림으로, 이에 대한 확실한 증명을 보여준다.
다음은 모택동 주석의 애마인 小青马 이야기이다. 모택동 주석이 직접 타던 말이었는데, 소청마는 키는 크지는 않지만 힘이 세고 민첩하고 속도가 빠르며 뛰는데 기복이 작고 편안하고 성격이 온순하고 성실하다. 그래서 중앙호위대의 그 많은 전마 중에 선정되어 모택동을 태우고 섬북의 정벌길에 이리저리 다니며 함께 하였다.
모택동은 이 소청마를 매우 아껴서 어려운 길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걸었다고 하는데, 한번은 말발굽이 떨어진 일이 있었고 그때 모주석은 말에게 고통을 줄까 몹시 걱정하여 걸어서 행군하였다고 한다. 말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소청마 또한 주인이 자상하게 보살피고 보호하는 것을 아는 것 같았는데, 언제나 모주석과 함께 하며 그를 보호하고 따랐다고 한다. 1949년 3월, 당중앙이 북경에 주둔한 후, 소청마는 군에 공을 세운 말로 인정되어 북경동물원으로 보내져서 공들여 양육되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소청마는 털색이 하얗게 변해서 "노백마"가 되었고 1962년에 노령으로 죽게 되었다. 죽음에 임박했을 때 소청마는 중남해(자금성 옆 모주석이 사는 곳) 쪽으로 세 번 큰소리로 울부짖었는데, 마치 주인을 향해 최후의 작별을 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소청마가 죽은 후, 북경자연박물관으로 옮겨져 그것을 표본으로 만들었는데, 연안혁명기념관은 전문인을 파견하여 소청마 표본을 연안으로 옮겨 국가 1급 문물(国家一级文物)로 지정하여 전시하였다. 죽어서도 국가의 보물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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