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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의진역사(山南義陣歷史) 7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 d3388100@hanmail.net입력 : 2020년 10월 14일(수) 17:38
충효재에 위패단을 제작하여 3천여 의사 중에 470여 분의 위패를 모신다. 이름조차 없는 분들은 하나의 위패에 모실 수밖에 없다.

충효재는 1933년 일제 치하에서 산남의진 정환직․용기 양세대장을 모시면서 지하 항일운동을 위해 지역 유지들이 세운 사당이다. 후손 정대영 선생께서 산남의진참진 의사들 모두를 모시는데 기꺼이 허(許)하시니 참으로 대장의 후손이시라는 생각이 든다. 11월 5일 추모제를 모시고 학술회의도 개최하니 많은 분들의 관심을 기원한다.


정순기 샛길로 따라가다[鄭純基從間道隨行]<산남창의지 18p>

역사적으로 보면 영웅의 앞길은 대개가 위험하였다. 관운장이 여몽(呂蒙)의 꾀에 빠져 위험에 빠진 일이며, 우리나라 임장군(林將軍)의 말로(末路)와 이 충무공(李忠武公)이 옥에 갇힌 일 등은 운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정공(鄭公)은 오직 아버지의 위험만을 생각하고 출발 당시에 눈앞에 만사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의 일도 적의 간계(奸計)가 아닌가 모를 일이다. 정순기는 이러한 뜻으로 이한구와 상의 하고 경주로 달려가 가만히 관변(官邊)에서 탐지하였더니 과연 속임수였으며, 용기는 이미 체포되어 대구로 호송당하였다. 순기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이 사실을 한구에게 전하고 대구로 따라가서 비밀을 탐지하였다.


이한구(李韓久)가 北으로 신태호(申泰浩)에게 원조(援助)를 청(請)하다<산남창의지 19p>

이한구는 경주의 소식을 듣고 대중을 향하여 울면서 맹세하여 말하기를, “정용기 공이 만일 돌아오지 못하는데 우리가 편안히 있음은 의를 저버리는 일이다. 경주를 함락시켜 이 한을 풀자.” 하고 정내의(鄭來儀)를 시켜서 신태호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태호 역시 병정에게 패전한 뒤라 수습 중에 있다. 서로 호응하고자 대중을 거느리고 한편으로 싸우고 한편으로 군사를 모집하며 북으로 향하였다.


정치훈(鄭致壎)의 상경(上京)<산남창의지 19p>

민간에서 전파되는 소문에 산남의진은 패전하여 대장은 경주진위대에 속아 사로잡혀 대구옥에 갇혔고, 도찰사(都察使) 공은 경성에서 붙잡혔다 하고, 혹은 도찰사(都察使) 공이 경성에서 붙잡혔으므로 할 수 없이 대장이 스스로 나아가 자수했다는 등등 들리는 말이 분분하므로 정치훈이 경성으로 출발하다.


정환직(鄭煥直)이 경성(京城)에서 활약(活躍)하다<산남창의지19p>

광무10년 병오(丙午) 정월에 경성으로 돌아온 정환직은 관계에서 물러나 있는 동지들과 교섭·결탁하여 퇴출당한 군인들의 생활비를 보급하고, 일면으로는 외국인과 교섭하여 군기 등속을 수집하던 중, 하루는 ≪한성신문≫에 남선 의병대장 정용기가 대구에서 잡혀 수감 중이라는 기사가 실렸음을 보고 크게 놀라 그 날로 남하하다가, 도중에서 종제(從弟) 치훈을 만나 대구 소식을 자세히 듣고는 다시 경성으로 되돌아와 용기의 석방을 주선하던 중, 때마침 상부기관으로부터 의사(義士)를 해치지 말라는 칙령(勅令)이 내렸으므로 다시 영남으로 남하하다.


시기를 살피고 휴병하다[侍妓을窺察하고 休兵]<산남창의지 20p>

이한구가 대중을 통솔하고 청하(淸河)·영덕·진보·청송의 여러 읍을 돌아다니며 싸우면서 신태호의진과 합세하여 경주를 함락시키고자 하였으나 태호가 적에게 핍박을 당하여 나갈 길이 차단되매 할 수 없이 남하하였다. 적의 1대대가 청송부에 진주하여 의병을 탄압하는 한편, 선유사(宣諭使)로 하여금 민중에 선전하기를, ‘의병만 해산한다면 일본은 즉시 철병할 것이며 절대로 영토적 야심은 없다.’고 하니 민심은 그 말 에 현혹되어 도리어 ‘의병에게 해를 받는다.’하고 원망하는 소리가 날로 더하여 갔다. 이에 한구는 중인에게 말하기를, “우리들의 이 의거는 나라를 안보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고자 함이거늘, 이른바 녹을 먹는 무리가 이토록 역선전을 하니 아무 것도 모르는 민중이 혹 그렇게 따르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니 우리들은 대중의 각성을 기다려 재거(再擧)함이 마땅하다.” 하고 드디어 휴병(休兵)하다.


(계속)

각주)
1) 임장군의 말로 - 병자호란 때의 충신 임경업장군이 결국 옥에서 모진 매를 견디지 못해 옥사함
2) 이충무공의 체수(滯囚) -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절제사로 왜군을 물리치던 중 모함을 받아 옥에 갇힌 일
3) 광무10년 병오(丙午) - 서기 19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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