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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나누미칼럼] 익양지 제6권 - 인물(人物)
정재진 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 d3388100@hanmail.net입력 : 2023년 01월 11일(수)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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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孝)
김경표(金烱杓) 김녕인. 어려서부터 어버이 섬기는 도리를 알아 길에서 맛있는 음식이라도 만나면 반드시 품에 품고 집으로 돌아와 (어버이에게)드렸다. 여름에는 부채질 하고 겨울에는 불 때기를 반드시 몸소 하였으며, 아버지의 병에 밤에는 눈을 붙이지 않고 똥 맛을 보고 하늘에 빌었다. 초상을 당해서 채소 먹기를 3년이나 하였고 장례 후에는 매일 묘소 돌보기를 바람과 비 춥고 더움으로 거르지 않아 이웃들이 칭송하였다.

조인환(曺寅煥) 임계경온의 뒤. 집안이 가난하였지만 어머니 모심에 효성이 지극하였다. 변변치 않는 음식을 드릴 때도 반드시 정성으로 하였다. 어머니가 하고 싶어 함에 하나라도 명을 어김이 없었다. 어머니 나이 80에 가까워 언제나 경치 좋은 곳 보기를 원하기에 겨우 자금과 경비를 장만하여 두루 금강산 일월산 학룡산과 도회 등지를 구경하면서 평지에는 부축하여 걷고 험한 곳에서는 등에 지고 길을 갔다. 인환의 나이 60여 살이 되었는데 일찍이 술에 흠씬 취하여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가 엄하게 꾸짖어 심은, (아마도 아들이 술로 인하여)근력을 상할까 두려웠음이니, (인환은)회초리를 부여잡고 호읍(號泣)하였다

권씨(權氏) 사인(士人)인 문소 김성락의 아내. 남편이 급한 병으로 죽자 권씨는 한 숟가락의 음식도 입에 넣지 않고 낮 밤으로 호곡(號哭)하였다. 곁에 있는 사람이 늙은 시어미와 어린 아들(의 봉양을) 이유로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고 진정하라 이르기에, 드디어 무슨 말을 하려 머뭇거리다 몸을 일으키면서 말하기를 ‘남편을 끝내 봉양하지 못했지만 임종의 부탁을 가히 져버릴 수 없노라’하고 지성으로 시어미 모시기를 전보다 더욱 두텁게 하였다. 갑인년 봄 권씨는 들판에 보리를 심고 있는데 시어미는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다가 우연한 실수로 불(失火)이 났다는 소식을 권씨가 듣고, 경황이 없어 엎어지고 자빠지며 위험을 무릅쓰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시어미를 안고 나오려하지만 시어미는 이미 구하지 못하고 권씨 또한 능히 일어서지 못하였다. 시어미를 부르는 소리가 은은하게 목구멍에는 있지만 나오지 않는다. 향리(鄕里)가 그녀의 효열(孝烈)에 감동하였고, 도내의 사림들이 비석을 세우고 정려(旌閭)하였다.

최씨(崔氏) 김해 김종채의 아내. 일찍 과부가 되어 시부모 모시기를 지성으로 하고 공양(供養)의 절도는 가난을 이유로 작게나마 게을리 하지 않아 이웃들이 그를 위하여 포상하였다. 이 사실은 풍화록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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