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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극혐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최병식 편집국장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 d3388100@hanmail.net입력 : 2018년 11월 28일(수) 17:21
ⓒ 경북동부신문


 우리 사회에 혐오문제가 참을 수 없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노인인구가 많은 우리지역은 그다지 심각한 상황을 감지하지 못한듯 하지만 사이버상에는 일상에 만연한 성차별적 언어폭력을 장전하여 무차별 난사하는데 정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 며칠 ‘이수역 주점 폭행 사건’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시끄러웠다. 흔히 보는 단순 시비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까지 오를 정도로 이슈가 됐고 성(性) 대립으로까지 비화하는 듯 보였다. 그 전에도 이와 비슷한 류의 상황이 몇 번 있었다. 2년 전 ‘강남역 살인 사건’이나 혜화역 시위의 도화선이 된 누드모델 몰카 사건이 대표적이다.
 사랑이라면 몰라도 우리 모두가 경악하는 남녀 혐오의 시대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이 문제의 기저에는 남존여비에서 시작한 남성우월주의부터 남녀평등시대를 이루는 시기의 페미니즘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남성 혐오가 아니다. 성별이나 나이, 신분 그 무엇에 의해서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는 외침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맨처음 일베라는 온라인커뮤니티에서 남자들이 여성혐오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메갈리아라는데서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남성혐오로 맞불을 놓았다. 우리 모두가 아연실색하는 극혐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는 성차별적 공격으로 양성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민감한 성 대립에만 초점을 맞추고 흥분한 결과다. 여성들의 경우 페미니즘으로 가장한 ‘워마드’가 극혐의 분탕질을 쳤다.   할머니나 엄마세대가 겪은 차별의 10분의 1도 겪지 않았으면서 분노는 그것의 몇 배로 내뿜는다. 악에 받친 구호와 웃통을 벗어 제끼는 퍼포먼스까지 그 무엇도 두려울게 없다는 태세다.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도 예술이다.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남자들이 지금까지 여자들에게 했던 억압, 제도, 행동을 똑같이 그들에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차별을 역차별로 보상받겠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공격 패턴이 훨씬 더 진화되고 강해졌다는 느낌이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차별이 있다면 건방지고 되바라지게 끝간데 없이 싸워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세상이라고 개떼처럼 결집하여 이런 극단의 혐오스러운 단어들을 쏟아내며 이전투구하는 분열이야말로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출산율을 0%대로 주저앉히며 초(超)저출산 시대를 주도해가는데는 이들 세대의 극혐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문제는 어떻게든 혐오를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 가려는 사람들이다. 싸움에도 품격이 있다. 혐오의 형태나 방법이 잘못된게 분명한데도 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상대를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배척하는 것 역시 문제다. 편협한 사고나 판단 오류가 잘못된 행동을 낳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을 초래하는지 정도는 분명히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다양한 커뮤니티의 경험이고, 그들의 목소리고, 상상이다. 남성 혹은 여성인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바라는 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 가운데서 나의 욕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그리고 나란 존재가 다른 존재들 사이에서 어떻게 위치 지어지고 평가받을 수 있을지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극혐은 우리 사회의 건강을 해치고 그냥 이대로 방치했다간 엄청난 사회적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 기나긴 갈등을 화합모드로 바꿀 방법은 없는가. 기회 있을때마다 강조하는 말이지만 ‘분열과 갈등’의 반대편에 ‘화해와 상생’이라는 열쇳말이 있다. 이런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봉합하려면 이 갈등을 어떻게 이해하고 함께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을 해야한다.
 갈등을 말할 때마다 하는 이야기지만 최선의 방법은 서로에 대한 ‘이해’밖에 없다.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이 서로 나누어지고, 그 차이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또 우리가 서로 한발짝 양보하고 이해하는 속에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폭력이 된 미러링과 극단주의는 언젠가는 퇴출될 것이라 믿는다. 착했던 우리의 딸들이 왜 이리 사나워졌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오늘날 극혐의 시대를 끝낼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이것조차 매우 주관적이고, 사적인 가치관을 반영한 개인의 철학이라고 알아주면 좋겠다. 어렵게 얽히고 설켜져버린 실타래를 생산적 방향과 화합으로 풀어낼 묘안은 없을까.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d33881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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