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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세심(洗心)과 후흑(厚黑)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 d3388100@hanmail.net입력 : 2019년 11월 14일(목) 14:51
옛날 선비들은 중앙에서 벼슬을 하다가 낙향하면 주위에 노송과 고목이 울창하게 우거지거나 얕으막한 산앞에 물이 흐르는 곳, 그런 경치가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살았다. 경우에 따라 주위에는 작은 연못을 만들고 제자들과 더불어 도학을 강론하곤 했다. 그런데 이런 정자의 이름을 지을 때 ‘세심(洗心)’이라는 이름을 많이 붙였다. 우리 지역 가까운 안강의 옥산서원에만 가도 ‘세심’이라는 글자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들어가는 마을은 ‘세심마을’이고 너른 바위에 ‘세심대(洗心臺)’라고 적혀있다. 이 밖에도 전국에 ‘세심정(洗心亭)’이라는 정자가 많은데 이는 곧 "마음을 씻는 정자"라는 의미로 보인다. 그리고는 찾아오는 벗들과 교유하고 제자들 기르며 시와 글로 어지러운 세상을 달래며 여생을 보냈다. 세심이란 세속에 물들어 오염된 사람의 마음을 본래의 맑고 깨끗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보면 무난하겠다.

지난주 토요일 영천상공회의소에서 선원포럼 초청 특강이 있었다. 이 자리에 강사로 지역의 대표적인 기업인 한명동 한스그룹 회장이 초청돼 ‘세심실천’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 참석한 많은 이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으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 곳에 취재차 갔던 나도 귀 기울이며 들었는데 평소 알던 ‘후흑학’이라는 책의 내용과 상충된 면이 있어 내심 상당한 가치관의 혼선이 왔다.

한 회장의 그날 강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한축은 ‘물질문명’이고, 또다른 한 축은 ‘정신문화’다. 그런데 AI(인공지능) 시대에 이를 만큼 물질적으로는 크게 발달했지만, 피폐해진 정신문화 때문에 우리네 삶의 질이 떨어진다. 몸에 때는 물과 비누로 씻으면 되지만 마음에 낀 때는 종교나 명상 등으로 마음수양을 부지런히 해야한다. 그것이 바로 ‘세심’이다. 세심하면 삶이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진다는 것. 또한 노인이 돼도 꿈이나 목표가 있으면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행복해진다고 덧붙였다.

반면에 후흑(厚黑)이라는 것이 있다. 중국 청나라 말 이종오(李宗吾)가 쓴 ‘후흑학(厚黑學)’이란 책에서 온 말로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을 말한다. 이 말은 사람의 얼굴이 성벽처럼 두껍고 속마음은 숯검뎅이처럼 시꺼먼 철면피와 후안무치의 상태를 요구한다.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이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용맹’을 지녀라고 주장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비슷한 처세술을 가르쳐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속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과 시커먼 복장을 하고 세상을 살되 처세에 비겁하지 말고 옹졸함이 없어야 하며, 큰뜻을 이루기 위한 대범한 전략을 갖추라는 교훈이 들어있다.

자, 이정도 되면 가치관의 혼란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기존의 윤리나 도덕률에 반하는 이같은 가르침의 책을 읽고난 사람이라면 내면적 갈등과 반감을 갖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역발상의 진실 혹은 현 세태에 정치인을 필두로 하는 사람들의 처세를 보면 자기도 한번 따라 하고픈 짜릿함은 있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웠던 도덕이나 윤리의 잣대를 고집한다면 험한 세상 살면서 타인과의 싸움에서 백전백패 하기 쉬우므로 후흑을 배우고 쓸 것을 깨우쳐 준다. 이런 이율배반적 가치관은 어디서 오는가. 사회가 다원화, 세계화 되면서 시작된 가치관의 혼란은 심각한 문제를 내놓는다. 새로운 경험과 지식, 생각에 기존 가치관을 유지하던 근간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전통적인 가치를 믿지 못하게 되고,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현대인의 가치관은 혼란스럽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모호해져갈 뿐만 아니라 하나의 평범한 진리와 원리에 대한 생각과 시각이 백가지가 넘고 제멋대로여서 어지러움만 난무하고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치들이 존재하고 그 가치들은 특정한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형성된 것이므로 단일하고 공통된 기준으로 그것들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세상 살아감에 있어 고민할 것도 많다. 바로 선과 악이요, 내로남불이다. 내가 소중하듯 상대에 대한 관심, 배려, 존중 등으로 내 이웃을 인정하고 감싸주는 것이 필요한데 내가하면 로맨스고 남이하면 불륜이 된다. 이것은 사회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때 진정한 가치가 있듯, 생각이 달라도 존재를 인정하고 아껴주어야 한다. 내 생각, 내 가치관이 소중한 만큼 내 이웃의 생각, 남의 가치관 역시 귀중하니 존중해야 하며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공간이다. 세상에서 성공한다고 다 칭찬을 받는 것은 아니다. 결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과정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부자되는 것이 목표라고 해서 도둑질을 해도 되는 것은 아니듯이, 직장에서 성공이 목표라고 해서 의식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주위로부터 받을 지탄과 상처도 그만큼 클 것이다.

개인이든 사회든 가치관이 비뚤어지면 인간상실로 가는 법이고,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여 함께 실천한다면 우리 모두 인간성 회복의 바른 길로 가 공동선을 지킬 것이다. 지금은 개인도 사회도 나라도 건강하게 `바로 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자각할 때다. 그 가치를 실현함에 있어 세심과 후흑중 과연 우리가 선택해야 할 실천덕목은 어느 것인가. 각자의 그 가치로 선택으로 오늘 세상이 돌아간다.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d33881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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