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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우리 사회의 감정노동자들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 d3388100@hanmail.net입력 : 2020년 08월 27일(목) 11:35
감정노동자라는 말이 있다. 고객을 직접 응대하며 어떤 상황에도 웃음을 잃지않고 친절함을 드러내야 하는 서비스직 종사자의 노동 형태다. 대표적인 직업을 꼽으라면 고급 백화점이나 항공사의 직원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잘못이 고객에게 있음에도 감정노동자라는 이유로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사과를 해야하는 직업. 만일 사과하지 않으면 불똥이 상사나 회사로 튀어 본인한테도 불이익이 올 거라는 전제를 깐다. 고객이 잘못했으면 사과를 받아야지 감정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 선뜻 이해가 안된다.

사람은 감정이 풍부하고 예민한 동물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도 풍부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메마른 사람이 있듯이, 강한 멘탈의 소유자도 있지만, 쉽게 상처 받는 연약한 사람도 있다.

‘갑질’이란 말, 근래 많이 하고 듣는 말이다. 흔히 남보다 돈 많고 또 많이 배우고 힘이 센 사람이 그보다 돈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힘조차 약한 사람을 마구 쥐고 흔드는 짓을 말한다. 그런데 갑질도 진화하여 비인격인 것을 넘어 야비하고 치졸스러운 갑질도 있다. 이런 갑질은 상대의 가슴을 심하게 멍들이고 영혼까지 갉는 인격모독이다. 호텔 주차요원 무릎 꿇린 모녀, 백화점에서 환불 거절하자 난동을 부린 아줌마, 아파트 경비원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입주자 등 지금까지 알려진 갑질만 해도 갖가지가 다 있다. 갑질을 하면 갑과 을 사이에 감정의 골이 패인다. 합당하고 배려가 있는 사안이라면 몰라도 야비하고 치사한 갑질이라면 악성이고 진상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든, 언제든 갑의 위치에 있을 수도 있고 때론 을이 되기도 한다. 물건을 사러가면 고객이고 내가 팔면 을의 위치다.

이 글을 읽는 사람중에 한번쯤 전자제품 수리 받으러 서비스센터를 방문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 휴대전화 A/S 받으러 서비스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직원은 정성을 다해 전화기를 살펴보면서 잘못된 부분을 꼼꼼하게 고쳐주었다. 모두 마무리되어 휴대폰을 받아 나오는데, 그 직원이 현관까지 따라나와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고쳐준 것만도 고마운데 문 입구까지 와서 배웅하다니 이런 과잉친절이 있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인사 끝에 한마디 더했다. 곧 고객 만족도를 확인하는 전화가 올테니 그때 ‘매우 좋음’을 달라는 부탁이었다.

무한경쟁 시대다. 어느 영역 할것없이 공급 과잉이 일면서 소비자 마음을 붙잡으려는 노력이 치열하다. 기업은 그런 속에서 ‘고객 만족’의 차원을 넘어 ‘고객 감동’을 시켜라고 강요한다. 무한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요구다. 그러면 감정노동은 더욱 가혹해진다. 고객은 무조건 옳으며, 고객의 작은 요구에도 고개 숙여 정중히 사과하라는 지침이 나온다. 나아가 더 높은 만족도를 위해 제품이나 서비스 구매 이후에 설문조사까지 벌인다. 점수가 낮은 직원은 지적을 받고 불이익의 대상이 된다. 한 군데라도 최고 점수를 받지 못하면 간발의 차이로 경쟁에서 지게되고, 만일 나쁜 마음을 먹은 고객이 최저점을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고객의 힘은 그토록 막강하고 어쩌면 갑질을 하도록 유도하는 측면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최근 공직에서도 청렴과 친절을 강조하다보니 일부 민원인의 갑질 수준의 횡포에 감정노동자가 된 공직자들이 골탕을 먹는 경우가 있다. 욕설과 폭언에 더하면 폭행까지 범위와 수위를 가리지 않는다. ‘죽고 싶을 만큼 큰 괴로움’을 느꼈다면 그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를 짐작케 한다. 왜 이렇게 무례한 민원인이 등장하는가. 그 배경에 인터넷의 출현과 현대인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어디에도 자기 목소리를 전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다른 사람이 받은 서비스와 본인이 겪은 경험을 쉽게 비교하면서 그 기대가 점점 높아진 때문이다. 공직자의 업무는 대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원인을 빼고는 말할 수 없고, 늘 민원을 받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감정노동이다. 하지만 이들이 보호받을 장치는 별로 없는 상태다. 따라서 공동선에 반하는 민원에 대해서는 감정노동자 보호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에 ‘고객은 왕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고객은 왕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객’(客)일 뿐이다. 손님이 주인 행세하면 곤란하다. 사소한 문제라면 대화와 소통으로 해결하면 된다. 철천지 원수도 아니면서 폭력까지 휘두르는 건 나쁘다. 작은 호의에도 감사를 표하는 것이 손님의 도리다. 많은 감정노동자들이 고통을 받는 시대 서로에게 요구되는 미덕은 오히려 겸손함이다. 만약 직원과 고객이 서로 가족이라면 인격모독이 아닌 이해와 배려로 매너를 지킬 것이다. 역지사지, 우리사회 감정노동자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존중하고 배려하자. 그러는 가운데 영천이라는 공동체에는 공정의 꽃이 활짝 필 것이다.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d33881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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