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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고깔을 쓴다 (117)
한 관 식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 d3388100@hanmail.net입력 : 2018년 11월 22일(목) 14:47
ⓒ 경북동부신문


 동등함에 비중을 두기위해 서로의 자리에서 동등한 어둠과 동등한 어둠속에 묻힌 산자락과 동등하려고 꿈틀거리는 이곳의 네 명의 가난한 삶을, ‘나무아미타불’에 실어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지만, 무게중심은 급한 곳으로 쏠리게 염불의 흐름은 굴곡을 더하고 있었다. 법진은 문득문득 꼽추 딸에게 신경이 쓰였다. 가운데로 나오지 않고 어둠의 귀퉁이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좁은 어깨의 한정된 시선은 볼거리에 몰입하고 있었다. 화전으로 이곳저곳을 인적이 드문 깊은 곳으로 떠돌기도 했지만, 자신의 장애로 마음을 문을 닫은 적이 더 많았을 게다. 자연히 낯선 사람과, 소통과 교류는 차단된 채 부쩍 마음과 신체는 자라나 타인에게 다가가는 법을 처음부터 배우지 않았을 게다. 존재감이 무엇인지도 모를, 어느덧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뒷전에서 뱅뱅 맴을 돌고 있는 것이다. 법진은 그녀를 앞으로 등장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삼 악장에 해당하는 염불을 일 악장, 이 악장의 일정한 시간으로 배분한 뒤 잠시 낙엽 밟는 소리보다 더 얇게 염불이 잦아들어가게 했다. 밥의 뜸을 들이기 위해 불 온도를 줄이듯, 서서히 모든 동작이 미세하게 파동칠 때 이제껏 퍼져나간 ‘나무아미타불’이 메아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고 싶다는 노인과 노인의 아내와 숯 검뎅이 묻은 아들과 꼽추 딸은 이 기이한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영적인 세계에 대한 확실성을, 오감을 초월한 영험한 기운으로 힘차게 받아들인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고즈넉하게 하게 들려오는 야행성 새소리 또한 한몫을 하고 있었다. 법진은 꼽추 딸에게 손짓으로 물 한 모금을 청했다. 산안개가 쉬엄쉬엄 퍼져나가는 것이 어둠속에서 보였다. 처마 끝에서 맺힌 안개방울이 말줄임표처럼 떨어졌다. 꼽추 달이 건네준, 놋그릇에 담아온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몰려온 졸음을 달랬다. 슬쩍, 그녀를 곁눈질 했다. 댕기머리 끝에는 분홍색 헝겊이 야멸차게 매여져 있었다. 군용야전 잠바가 헐렁했지만 단단하게 옷섶을 여미고 있었다. 무표정의 얼굴로 놋그릇을 건네받고 사라지는 꼽추 딸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새벽 공기가 왠지 수더분했다. 
 그러다가 현기증이 났다. 뭔가 날이 밝아오는 여명기로 향하는 새벽녘이 아니라 어둠을 불러 모으는 황혼기로 다시 접어들 것 같은 혼란에 빠져들고 있었다. 시간이 거꾸로 뒷걸음치고 있는 듯 했다. 법진은 목탁 손잡이를 힘껏 움켜쥐었다. 목탁채로 달려오던 사 악장의 염불에 서서히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크고 빠르게 산야를 들쑤시고 있었다. 멈출 수 없는, 멈춰서도 안 되는 오직 앞으로 곧고 바르게, 빠르고 크게 확산되어갔다. 혹시 잡념이나 불신으로 그르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머릿속에서 떨쳐버리기 위해 목탁채는 신명을 다하고 힘줄이 선 목청은 한 꼭지 한 꼭지를 정성껏 뱉아내고 있었다. 승복 안에서 땀이 맺혀지는 것 같았다. 법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무릇 생과 사의 번뇌를 하나의 이치로 정의하기에는 위험하지만 스스로의 절망과 탄식이 넝쿨처럼 번져갈 때 완성되어 가는 존재로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그것은 나무의 옹이다. 몸에 박힌 그루터기에서 자란 옹이는 나름대로 굴곡진 삶을 인정받지만 목재로 가공할 때 결점으로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옹이 박힌 나무가 산을 지킨다. 사 악장의 염불의 힘은 옹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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