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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깔을 쓴다 (136)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 d3388100@hanmail.net입력 : 2019년 05월 09일(목) 11:40

노인은 아들의 손을 말없이 잡았다. 인연 줄은 잡긴 쉽지만 서로의 의미로 지속되긴 어렵다는 것을 세월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내의 손을 잡은 노인의 음성이 여린 풀잎처럼 떨렸다.
-스님, 붙든다고 머물러 있지 않을 꺼라고 생각했심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먼 산 보듯이, 한번쯤 생각해주시고 전생에서 얼마나 질긴 인연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 딸년도 기억해주이소. 지나는 걸음에 인연 줄이 끊기지 않았다면 걸음을 옮겨 들려주시고, 붙박혀 사는 살림살이가 아니니까 혹여 빈터만 보여, 빈 걸음으로 돌아서더라도 어느 하늘 밑에서 잘 살게 염불 한 번 해주이소.
속세의 인연이 닿으면 쉽게 돌아서지 못하는 끈적끈적함이 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법진은 툇마루에서 일어섰다. 작은 동요, 작은 미련이 가슴에 얹힐 때마다 무수히 이겨내야 하는 냉정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세월 속에 정진해야하는 수행의 옳은 가르침이여. 그 가치와 규율의 깨달음이여.
부엌 쪽문 틈 사이에서 묵묵히 듣고 있는 그녀의 동선이 비춰졌다.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처럼 이내 얼굴을 돌렸다. 만리장성을 그녀에게 두고 법진은 업보를 챙겼다. 더 많은 무게로 산다는 것과 존재한다는 것의 경계선에서 와락 자신을 껴안고 때로 놓아줄 것이다. 삶은 늘 뒤죽박죽이다. 어딘가에 또 걸음을 멈추게 하는 인연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때의 선택은 그때에 맡겨두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아닌, 지금도 맞고 그때도 맞다 라며 자신에게 다독여주자. 그때나 지금이나 뒤틀리지 않게 살거나, 옹이로 나무의 결을 훼손하지 않으면 그나마 순탄한 여정이었다고 인정해주자.
법진은 노인의 집을 벗어나면서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다. 더는 갈 곳 없는 노인의 반 토막 인생과 한 번도 반기를 들지 않은 앞뜰 잣나무 같은 아들의 인생과 오래오래 제 속을 비워가며 그 자리를 지킬 아내의 인생과 등 뒤에 혹을 달고 사는 꼽추 옥자의 인생이, 그 긴 산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이 시간 속에서 버티고 있는가를, 방해받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의 발자국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어쩌다가 단단한 그리움에 부딪혀 떠난 것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혹독함도 스스로의 몫으로 돌려놓아야 되었다.
지금 법진의 뒷모습을 기억하는 노인과 아내와 아들과 딸아. 혹시 어젯밤 떨군 씨앗에서 딸의 뱃속에 새싹이 돋아나면 들려줘라. 민들레 홑씨 되어 떠돌다가 취해도 울지 않은 메마른 뒷모습의 아비가 정녕 네 아비였다고. 주인을 알 수 없는 그림자만 우두커니 담벼락에 세워두고 떠난 아비가 정녕 네 아비였다고. 사람의 서러운 정을 역마의 발걸음으로 재촉하여 떼놓고 싶어, 아프게 다녀간 아비가 정녕 네 아비였다고. 바람이거나 잎새이거나 너와조각이거나 반딧불이거나 간에 인생의 길 끝에 서서 손바닥을 펼쳐 흔들어주는 작은 눈물 한 방울 같은 서러움이 있으면 기억은 시작되었다고 다만 그 인연의 흔적을 업보라고 포장하고 싶은 아비가 정녕 네 아비였다고. 다시 기다림과 만남이 시작된다면 땅 끝에서 처음과 혹은 마지막이라는 물음과 함께 그런 아비가 정녕 네 아비였다고. -계속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d33881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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