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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깔을 쓴다 (143)
한관식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 d3388100@hanmail.net입력 : 2019년 07월 03일(수) 14:21
기억은 고여 있지 않고 다음 기억에 언제든 자리를 양보해준다. 골 깊은 기억이라 해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다만 연상되는 충격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그날의 기억은 오소소 찬바람을 일으키며 댓잎처럼 흔들린다. 우리의 여덟 살은 기억의 저장 공간이 북적대고 좁아서 그런지 그다지 끼어들지 못하고 이내 소멸되었다. 그러나 친구의 죽음이 얕고 소소한 일상에 소멸된 줄 알았는데, 구덩이를 움푹 파고 그 안에서 동면에 들어갔다는 것을 세월이 흐르면서 알았다. 몇몇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군용트럭 뒷바퀴에 빨려 들어가는 친구의 일그러진 얼굴과 곧이어 들려오는 머리가 으깨지는 소리, 검붉은 피가 곳곳에 솟구쳐 나오고 비포장도로의 먼지와 도저히 생명이 자랄 것 같지 않은 길에서 가늘고 여린 풀잎들의 흔들림까지 모두가 우리 안에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새파란 트럭 운전병이 차에서 내려 바로 서있지 못하고 무릎을 꿇어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하는 장면까지 우리의 사고, 감정, 지각, 행동들의 곳곳에 가시처럼 박힌 것을 성인이 되어 알게 되었다.
지금은 여덟 살이다. 여전히 우상열 주위에 모여 군데군데 앉거나 서거나 경청을 하고 있었다.
-단포극장이 문을 닫는다고?
우리는 일제히 우상열을 쳐다봤다.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라 가운데 있는 우상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다가 서로 놀라는 표정을 마주하게 되었다. 여덟 살의 좌절과 변화를 훨씬 뛰어넘은 애늙은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범호아저씨가 말해줬어.
범호는 삼사관 주변에서 가장 많은 아가씨를 데리고 방석집을 운영하는 배상희의 아들이었다. 우리에게 할머니뻘 되지만 모든 사람들의 호칭은 배상희였다. 그 배상희의 아들인 범호는 단포극장 기도였다. 화려한 발차기 하나로 이웃 마을 건달 세 명을 쉽게 제압 했다는 신화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환풍기 구멍으로 숨어들어간 극장 안에서 때때로 잡히긴 했지만, 꿀밤 한 대로 풀어준 고마운 범호였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 중 누나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사실 때문에 직업에 충실해야 할, 범호의 배려가 큰 작용을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범호아저씨가 그러면 확실한데, 큰일이다.
-왜 문을 닫는데?
-영천에 아카데미 극장이 들어와서 보러오는 사람이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하더라.
-반이면 빈자리가 많아 좋을 건데, 안그러나?
-이런 답답아. 돈이 들어와야 더 재미있는 영화가 극장에 내걸리지. 맨날 돌리던 영화가 뭐 재미있다고 보러 오겠나. 아카데미극장은 중국영화, 서부영화도 일주일마다 바뀐다고 난리더라.
우리의 아홉 살이 문턱에 다다른 어느 하루, 그해 겨울로 접어들었다. ‘빨간 마후라’ 간판이 내려지고 더 이상 다른 간판이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 흉물스럽게 단포극장은 버려져 있었다. 범호만 한사람이 드나들게 만든 입구 쇠봉을 몇 번 만지작거리면서 다녀갔다는 소문만 들었다. -계속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d33881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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