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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고깔을 쓴다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 d3388100@hanmail.net입력 : 2019년 11월 28일(목) 13:56
나뭇가지에서부터 발목이 자유로워진 아기 고라니는 이 상황이 쉽게 감지되지 않는 듯 머뭇거렸다. 뛰어 오르고 솟구치고 달려 나가는 본능을 잊어버린 것처럼 멀뚱멀뚱 거렸다. 오랫동안 옭죄어왔던 나뭇가지로 부터 쉽게 풀려나기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에 대한 기대감도 그것에 대한 희망도 분질러진 채로,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푸른 계곡과 푸른 들판과 푸른 산야는 여전한데, 발목을 잡고 있는 단단한 옭죄임으로, 더 이상의 내일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까. 간헐적인 울음과 두려움에 떨던 잿빛 털은 풀이 죽어 윤기를 잃어버린 지 오래인 것 같았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기고라니를 보며 우리도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나뭇가지에서 자유로워지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반딧불 같은 작은 새벽불빛이 이정표가 되고, 억새풀의 속삭임이 넓적다리로 전해져 신기루처럼 사라질 줄 알았다. 꽁무니를 빼지 못한 선두의 그와, 자원하여 합류한 내가 한걸음 뒷걸음질 쳤다.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 달려가라는 배려에서 연유되었을 것이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자유다. 그가 말한 것 같기도 하고, 입 밖으로 새여 나오지 못한 가슴속 옹알이처럼 들려왔다. 어쩌면 새벽이 주는 미묘한 기운이 그렇게 속삭였는지, 모호해졌다. 그러다가 그 짧은 시간에 눈이 마주쳤다. 동화 같은 눈망울이 내 가슴에 얹혔다. 맑고 투명하고 순수하고 영롱하고 슬픈 미상불 산속의 등대 불처럼 느껴졌다. 아기 고라니가 서서히 몸을 움직이자 이슬 머금은 잿빛 털이 부르르 요동을 쳤다. 한발 뒤로 물러선 우리의 기다림을 배신하지 않고 크고 넓은 자신의 세계로 달려갔다. 살기위한 힘이 남아있어서 다행이었다. 뒷다리와 엉덩이가 껑충 뛰어 오르면서 산과 산이 만나는 능선으로 내처 사라졌다. 어둠의 넝쿨이 뻗어있는 능선에서 불쑥 보였다가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일행들도 자신의 몫을 챙겨가기에 바빴다. 혹시 놀랄까봐 숨을 참고 있었다느니, 무음으로 전환한 핸드폰을 꺼내 보이기도 했다. 맞물려 얽혀있는 나뭇가지를 떼내어 여기저기 흩어 놓았다. 우리가 다녀간 뒤로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말라며 나뭇가지를 제각기 멀리 던졌다. 낙엽더미 속으로 털썩 던져진 나뭇가지에서 잠깐 무지개가 만들어졌다. 일행 중 한명이 아기 고라니가 사라진 능선 쪽으로 손가락질을 했다. 팥죽에 넣을 새알 같은 빛이 동글동글 만들어져 막 능선에 걸리고 있었다. 지체된 걸음을 서두를 때라고 누군가 소리쳤다. 캔 맥주 무리와 막걸리 무리가 뒤죽박죽으로 산길을 탔다. 걷힌 안개와 함께 도도한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 생각되어졌지만, 아기 고라니에게 베푼 온정을 함께 얹기로 했다. 진안 정수장 산중턱에 다다랐다. 각자의 위치에서 삼각대를 고정하고 이 순간,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신음소리와 땀방울과 삽입된 격정의 시간을 오롯하게 만끽하고픈 바램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그 흔들림 없는 서로의 간격과 서로의 위치와 서로의 몰입은 팽팽하게 긴장감을 극대화하는데 조금의 뒤쳐짐도 없었다. 잣나무 두 그루가 우뚝 솟아있었다. 풍경을 담보로 남겨둔 잣나무 두 그루에서 일출의 기운이 번지고 있었다. 빛의 연결고리가 매력적으로 다가와 감각적 사유로 흥건히 엎질러진 그곳에 걱정했던 안개가 걷혀, 비현실적이라도 좋을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계속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d33881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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