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에 가면 우리나라 민가주택 가운데 제일 처음으로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선교장이 있는데 이는 1967년 4월 20일 국가지정문화재 제 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은 조선조 효령대군의 11대손인 가선대부 이내번(李乃蕃/1703~1781)에 의해 처음 지어진 건물로 무려 10대에 이르도록 생활하면서 확대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상류주택으로 300여 년 동안이나 그 원형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전통가옥에 지금까지도 그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조선조 세종 때 제정된 ‘각간지수’ 에 의하면 당시 부자들이 지을 수 있는 최대의 규모가 99칸이고 조선의 궁궐은 999칸을 넘지 못하였으며 중국 천자의 궁궐은 9999칸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 집을 처음 지은 이내번은 원래 충북 충주에서 살았으나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와 함께 외가인 강릉으로 이사를 와 생활하게 되었고 이곳에서는 다행히 재산이 점점 늘어 나중에는 관동지방의 만석꾼으로 명성을 떨치며 부를 누리게 된다. 그는 늘어나는 식솔과 더불어 큰 저택이 필요하자 집터를 구하던 중 이곳 선교장에 정착하게 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사연인 즉, 어느 날 그의 앞에 족제비가 나타나 일렬로 무리를 지어 서북쪽으로 이동하기에 따라가다 보니 현재의 선교장 터 부근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족제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귀신에 홀린 듯 그곳에 혼자남아 주위를 살펴보니 주위에는 야트막한 산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앞에는 호수가 펼쳐져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형 명당이었다. 이내번은 아 이곳이구나 하고 산자락 따라 내려오는 지맥의 용진처에 터를 잡고 새집을 지어 이사 온 곳이 지금의 선교장이라는 야사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집은 앞쪽으로 인공연못을 파고 정자를 지어 활래정(活來亭)이라 이름 짓고 연못과 함께 경포호수의 경관을 바라보며 관동팔경을 유람하는 조선선비들의 안식처가 되었고, 만석꾼 곳간에는 항상 곡식이 가득하여 흉년에는 창고를 풀어 이웃에 나누어 주었으니 베푸는 집안의 표상이 되기도 했다. 이곳은 집 뒤편의 야산에 있는 노송의 숲과 집 앞 활래정에서 멀리보이는 백두대간의 사계절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운치는 가히 한국제일의 절경이다. 지난 2000년 한국방송공사에서 한국 Top10 전통가옥을 선정할 때도 한국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되었다 선교장은 백두대간의 곤신봉(1,135m) 에서 뻗어 나온 지맥이 대궁산(1008.3m) 을 거쳐 야트막한 태장봉(110m)를 일으키고 여기서 분맥을 하여 남쪽 줄기에는 오죽헌, 북쪽 줄기에는 선교장이 위치하고 있다. 선교장은 둥그스름한 금형의 태장봉을 배산(背山)으로 하여 지어졌고 정면으로 보이는 안산 역시 그 모양이 노적봉이다. 노적봉은 일명 창고사(倉庫砂)라 하여 곡식을 쌓아놓은 모양으로 집안에 큰 부를 가져다주는 산이다. 대문 바로 앞에는 우물이 있고 여기서 사시사철 솟아나오는 물이 집 앞 연못으로 흘러 들어가기에 연못의 물은 항상 맑다. 풍수에서는 집 앞에 흘러나오는 지하수를 진응수(眞應水)라 하고 매우 귀하게 여기며 그 안쪽을 대 혈의 증거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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