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10)순간 긴장 했다. 임신이 절실한 그녀가 한줄 나온 테스트기에 실망하여, 집 구경을 시켜준다는 저의가 한눈에 그려지는 풍경이었다. 두 바퀴 나이 차이로 도덕적 운운하며, 이런 기회를 포기한다는 것은 코앞에 들이민 밥상을 엎는 꼴이라 결론을 내렸다. 혹시 변심할 우려에 앞자리에 태워 안전벨트까지 매어준 승용차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일반도로에서도 퉁퉁거렸다. 정말 산을 깎아 지은 단독주택이 적막하게 홀로 버티고 있었다. 가령 야식이 먹고 싶을 때 퀵이 올수 있는 적당한 거리가 최적의 집이라는 고정관념이 한 꺼풀 벗겨졌다. 왜냐하면 수피아가 사는 집이 여기이기 때문이었다. 스프레이, 삼단봉, 전기충격기 같은 호신용으로 두려움은 이겨내고 있을까, 그런 질문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었다. 병적으로 외출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샤워부터 해야 한다며 욕실 입구에 옷가지를 벗어두고 이미 사라져 버렸다. 멀뚱하고 어색하게 붙박이처럼 서있던 나는 대단한 놀이라도 떠올린 것처럼 반짝 빛났다. 수피아가 말한 지하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래, 저것이 지하실이구나!’ 벽에 바짝 붙어, 낮고 완강하게 지하실문은 열려있었다. 빗살무늬 욕실 유리를 통해 언뜻 비치는 수피아의 알몸을 뒤로하고 지하실 계단을 내려갔다. 비장했고 사뭇 진지했다. 실선처럼 파고드는 햇살들이 종으로 횡으로 뻗어있었다. 넓고 높은 통로는 세월의 진득한 곰팡이가 퍼져있었다. 수피아가 말한 돌탑 앞에서 긴 들숨에, 긴 날숨으로 호흡을 정리했다. 돌탑을 쌓는 대신 발로 돌탑을 무너뜨렸다. 어쩌면 돌아갈 것을 포기하는 의식 같았다. 내년이면 노령연금을 받을 66세이기에. 그런 무미건조한 나날에 대한 반기쯤으로 받아들였다. 모래알갱이들을 밟으며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자기장이 요동치는 지점에 다다라 한동안 아득해지고 뜨거워지는 경험으로 들썩거렸다. 마치 간질병 환자의 발작처럼 가슴속 오래 멈추지 않을 울렁증으로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자력으로 빠져나가고 싶었다. 힘껏 새총 고무줄처럼 당겨 온몸을 그대로 놓아버렸다. 벽에 한번 부딪히긴 했지만 다행히 자기장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후두두둑, 댓잎이 부딪히는 소리처럼 침묵하고 있던 수백 마리 비둘기들이 지하실 통로를 따라 입구 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황홀한 풍경이었지만 내면 깊숙이 할 말을 잠재우는 풍경이기도 했다. 지하실 통로가 끝인 입구에서, 한 쪽으로 기운 문짝에 달린 녹슨 문고리를 잡았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가 문고리에서 전해졌다. 이 문짝을 벗어나면 세상의 밖일까, 안일까. 좀체 가늠이 되지 않았다. 지하실 밖은 자호천 물소리들이 비둘기 깃털에 뒤섞여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쯤 모래알갱이에 반쯤 덮인 머리뼈가 보일 것처럼 느껴졌다. 진심으로 두리번거렸다. 동이 틀 무렵의 햇살은 순해서인지 확실한 형체를 제공하지 않았다. 시야를 가리진 않지만 거기에서 거기인 것처럼 불명확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해골을 포기한 굼뜬 걸음으로 다가와 자호천 물살에 발을 담그었다. 놀란 송사리들이 물결로 퍼져나갔다. 구월 폭염에 매미가 울었고, 먼 산 뻐꾸기도 무심하게 존재감을 알리고 있었다. 간지럼을 먹이며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송사리들을 마냥 허락한 채 캠핑족들이 쳐놓은 텐트를 눈 여겨 보고 있었다. 몇은 일어나 모닝커피를, 몇은 아침 산책을, 몇은 잠자리에서 깨어나지 않은 게으름을 저마다 자신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곳에도 일인용 텐트는 있었다. 신발을 신으려고 정성스럽게 물기를 닦았다. 그리고 뜬금없이 일인용 텐트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무랄 데 없는 도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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