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감정 분출만 하고 산 사람들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남에 감정을 추스르는 법을 알지는 못한다.’ 나는 이 정도를 확인한 것으로 새해를 시작해야 했다.나는 작년 하반기 6개월간 가족과 일절 연락을 끊고 지냈다. 아버지 기일에도 참석하지 않았다.내 인생이 전복되는 사건을 겪은 건 지난 여름의 일이었다. 복잡한 가족사가 뒤얽힌 이 사건은 내 어머니를 다시 규정해야 했고, 내 누나 형도 다시 규정해야 했다.그러나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립해야 할지 알 수 없을만큼 혼돈의 시간이었다.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던 중 내 감정의 1도 이해하지 못하는 형이 돈을 보내오고 편지를 보내왔다. 아버지 기일을 앞두고서였다.나는 돈을 보고 또한번 경악했다. 보내온 두 통의 이메일은 쓰레기통으로 처박아버렸다.나이 50의 형이 보인 행태는 그야말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고, 내 당시 감정으로는 평소처럼 형의 유치함을 자조하며 받아낼 여유가 없었다. 되레 화만 돋우었다.그 일로부터 다시 두어 달이 지났다.12.3 대통령의 느닷없는 계엄령선포로 서울 사는 형이 걱정되어 전화를 넣었다.‘감정은 흐르는 물과 같다. 결국엔 흘러가 버린다. 그러고 나면 배설물처럼 쏟아낸 나쁜 말과 행동만 남는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나는 그리 6개월을 버텼다. 나로선 엄마도, 누나도, 형도 버려야 할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내 엄마가 나를 배신할 수 있다니 그동안의 엄마는 뭐고, 지금의 엄마는 뭔가.도대체 내 형이란 사람, 내 누나란 사람은 매번 나를 필요로 할 때는 잘만 가져다 쓰면서 내가 필요로 할 때는 방관자이거나 무능한 자일 뿐이었다.나는 부모도 형제도 집도 절도 없이 세상에 홀로 처연하게 놓이게 됐다.나를 버티게 한 건 두 아들과 아내였다.아내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두 아들은 눈치껏 아비의 감정을 헤아려가며 기다리고 응원해주었다.12.3 사태로 내 분노의 실타래는 한줄 풀었지만, 이 사건 이후 내가 어머니를 대하고 누나를 대하고 형을 대하는 마음은 그전과 같지 않았다.옥이야 금이야 여기던 예쁜 그릇 하나가 깨져버렸고, 그 그릇은 죽었다깨어나도 다시 새것처럼 못 붙이는 것이었다.사람 감정이란 바로 깨진 그릇과도 같은 것이다. 악감정일수록 치유는 힘든 법이다.나는 책을 읽으며 책속에서 엄마와 화해하는 길을 더듬어갔다. 형은 ‘용서’라는 단어를 썼지만 아들과 자식 사이 용서란 말은 가당찮다. 적어도 나와 엄마 사이에는 그런 단어가 성립되지 않는다.엄마도 엄마의 최선을, 나도 나의 최선을 다했기로 아무리 큰 과오를 발견했다한들 누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건 내 어머니의 나머지 인생을 부정하는 근시안적 태도다.‘천륜을 끊을 수 있는가.’ ‘엄마 연세가 여든이다, 여든.’여든 노인을 상대로 이러는 게 얼마나 치사한 짓인가. 사내로 못할 짓인가.2024년의 막날도, 2025년의 새해도 인지하지 못하고 지냈다.12월 31일을, 1월 1일을 아내가 아이들 일정을 들려주는 통에 알아챘다.‘그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법이랬다.’6개월이면 여든 엄마에게는 60년 같은 세월이었을 거다.그러고 있는데, 어쭙잖게 형이 또 개입해 왔다. 고시원에 틀어박혀 지낸 세월이 14년인 형은 우리 가족사를 모른다.엄마랑 둘이 풀어야 문제니 시간을 달라고 했다.그런데 어쭙잖은 자기 감정을 갖고 나를 재단하려 들었다.결국 내 분노의 파장은 엉뚱한 데로 튀었고 형은 형대로 분노했다.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물러설 이유가 없었다. 내가 과거 14년 동안 형을 대신해 가족사를 일군 역사를 형은 1도 인지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내가 동생으로서 보인 배려와 희생 그리고 응원을 당연한 공기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참으로 참담했다.자기의 나쁜 대목을 내 감정 그대로 이야기하자 거기에 발끈해 쌍욕을 해댔다.나도 쌍욕을 해주었다.2024년 12월 31일 오후의 그 악감정으로는 엄마, 누나, 형, 나 4인 가족이 전부 죽어야 끝나는 일이었다. ‘우와, 세상에 이런 꼬라지도 있구나, 이러고도 가족이라고 45년을 살았구나.’누나와 형은 늘 자기 감정을 배설하는 쪽이었다. 나는 그 배설된 감정을 수습하는 쪽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감정을 배설하는 쪽이 됐다. 평생을 배설만 하고 살아온 탓에 내 감정을 누구도 수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건 형과 쌍욕을 주고받은 그날 밤이었다.나만 미친 놈이었다. 나만 이상한 놈이었다.12월 31일 밤 엄마, 누나, 형, 나는 각자의 집에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