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건너 이웃 어머니가 책을 나눠준다 했다. 비매품인데 좋은 책이었다. 같은 책을 3권 올렸는데, 2권을 주십사 했고, 1권은 부군이 소장하기로 했다. 이 책은 청양의 고운식물원에서 발행한 것이다. 고운식물원은 기후위기에 대응해 멸종위기 식물, 노거수 등을 보존하는 민간사업체다.이 책에는 천연기념물을 비롯해 우리가 등한시하는 여러 식물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식물원 회원에게 배부하는 책자라고 한다.이 책자를 이웃 어머니는 3권 소장하고 있었고, 그 말은 가족 3명이 회원이란 뜻이다.이웃 어머니를 아파트 상가 빵집 앞에서 만났다. 책을 건네며 묻는다. “책하고는 상관없는 질문인데, 근데 출발하면서 왜 ‘지금 출발합니다’라고 톡을 넣으셨어요?” 내 행동이 이상하다는 듯 묻는다. “아, 약속은 12시 30분에 했지만 잊어버리는 수도 많으니까요.” “그래요? 저는 출발했다고 하니 그럼 어디서 출발한다는 거지? 30분까지 못 온다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아, 근데 어머니처럼 30분 약속이니까 30분에 그냥 맞춰 나오는 분들이 의외로 드물어요. 제가 당근을 4~5년 했고 당근 온도가 99,9도인데, 제 경험상 어머니 같은 분은 백에 둘 정도에요. 마지막까지 서로 확인해야 시간낭비를 덜 하지요. 요즘은 경비실이나 우편함 위 아니면 문고리 거래를 많이해요. 코로나 이후로 어머니처럼 직접 만나 거래하는 경우는 드물죠.” “그렇군요. 근데 너무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서 저는 주소를 안 가르쳐줘요.” 나는 “너무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서”라는 대목에서 호기심이 일었다. “혹시 책 읽는 거 좋아하세요? 제가 귀한 책만 받아가기 그래서. 저도 책을 선물로 드릴까요? 제 책을 드리는 게 그래도 의미가 있겠죠?” “어머, 당근하다 보니까 별일도 다 있네요. 감사해요.” “제 집은 길 건너 저기니까,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경비실에 둘까요?” “우편함 위에 부탁해요.” “서명해서 드릴 테니, 성함을 톡으로 알려주세요.” “네.” 그리 이웃 어머니 성함을 받고 간단하게 몇 자 적어 [보통 글밥1]과 <문인송 가는 길>에 낙관을 박아 자전거를 타고 다시 어머니네 아파트로 건너갔다. ‘지금 갑니다. 우편함 위에 올려둘게요.’ 그 사이 어머니는 내게 톡을 보냈다.(내려가서 기다릴게요.) “어, 나와 계시네요.” 어머니는 내게 고급 비타민을 한통 건넸다. “이 귀한 책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이거 받으세요.” “아이고, 이게 뭡니까. 저는 좋은 책 받아 답례로 드리는 건데. 제가 또 선물을 받네요. 이러면 어머니가 빚지시는 건데.” 그리 아파트 주차장에 서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참으로 놀라운 사연이 일상처럼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 입에서 터져나오고 있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자기 시간을 갖게 됐다는 것과 아들이 자폐아라는 사실을, 우리가 점심 때 뭘 먹었다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말해주었다. 첫째 딸이 둘째 자폐아 아들 때문에 받았던 상처도 드라이하게 털어놓았다. 딸의 근황과 아들의 사정을 생면부지의 내게 조근조근 들려주었다. 부군의 직업도 알려주었다. 그 어머니 이렇게 말했다. “저도 많이 지쳤고, 딸 아이도 많이 지쳤다고 했다.” 나는 비범하고도 비장해야 할 말들이 형편이 그러해 어느새 평범한 말이 돼버린 삶속에 파묻힌 이웃 어머니를 보면서 생각했다. ‘어머니야말로 위대한 어머니십니다. 그랬군요. 20년 만의 잠깐의 자유를 얻으셨군요. 지치셨다지만 지칠 수 없는 그 삶을 제가 얼마나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웃 어머니께 말했다. “어머니, 따님이 주말에 군산에서 올라오면 우리 집을 한번 들러주세요. 따뜻한 차 한잔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따님에게는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저와 제 처의 이야기가 따님에게 물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는 그러겠노라 답하며 등을 돌려 아파트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저녁답에 낮에 있었던 일을 집사람에 이야기했다.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으로도 어쩌면 이 땅에 태어난 값을 다한 것인지도 몰라. (그러니 라온이 바론이 너무 잡지 말아.)” /심보통 2024.12.2 경북문화관광공사 회의 가는 길에 기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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