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6)세상과 통하는 문은 거친 호흡을 내뿜으며 게으르게 열렸다. 나무문짝 밑은 이미 버틸 힘을 잃었는지 개구멍처럼 너덜거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수백 마리 비둘기가 드나들 최적의 통로를 이미 문짝이 제공하고 있었다. 형편없이 기울진 채로 문짝은 열렸고, 낙동강 줄기로 뻗어나간 자호천 백사장이 거짓말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지하실 바닥에서 모래알갱이가 묻어나왔다고 생각하니 왠지 섬뜩했다. 일제 강점기말기에 집을 짓고, 항시 안전하게 떠날 준비를 위한 지하실을 자호천까지 연결해둔 일본인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자호천 나루터에는 일본까지 실어 나를 큰 범선은 없어도, 목숨을 연명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대책방안은 마련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하실 바닥을 헤매느라 힘들었던 깡마른 여자는 가슴을 한껏 폈다. 그리고 두려움과 막막함에 거칠어진 호흡을 마구 뿜어내었다. 세상 밖에서 오소소 떨던 자신을 세상 안으로 데리고 온 셈이었다. 자호천 백사장으로 나왔을 때 팔월의 녹음이 우렁우렁 몰려다니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행복했다. 모두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재빠르게 흐르는 세월의 흐름에 탄식도 늘여놓으며 살아가겠지. 힘든 만큼 스스로를 다독이며 위안이 될 감정들을 가슴속에 담아두기도 하겠지. 자호천 바닥을 흐르는 속 깊은 물살이 가끔씩 반짝거릴 때 깡마른 여자는 송사리라 읽었다. 쪼개고 다듬고 둥글게 만들어질 바위라 생각하지 못하고 단지 표면에 드러난 송사리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문득 뒤를 돌아봤다. 이 땅에 터를 잡아 뿌리를 내리고 싶었던 일본인 일가의 야반도주가, 자신의 선 자리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니 놀라웠다. 그렇다면 미처 챙기지 못하고 두고 간 것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깡마른 여자는 주위를 거침없이 둘러보았다. 언제 적 풀숲인지 언제 적 돌무덤인지 개의치 않고 일본인 일가의 흔적을 뒤졌다. 마치 어제 일처럼 뒤지던 깡마른 여자의 손길에 해골이 만져져 올라왔다. 짐승의 뼈와는 확연하게 구별이 되는 해골이었다. 머리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모습에서 더 많은 사연을 들려줄 것 같았다. 처음에는 무수한 모래 알갱이 속에서 반짝 거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해골에게 다녀간 백년의 세월은 그리 굴곡지진 않았다. 모난 부분을 순하게 길들이기까지 수천 년의 세월은 바위에서 모래로 변신을 꾀하여 왔다. 고작 백년의 머리뼈가 모래 알갱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깡마른 여자의 손 그물에 잡힌 머리뼈 외에 어깨뼈, 팔뼈, 갈비뼈, 다리뼈는 사방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짐승에 의해, 바람에 의해, 침식에 의해, 물살에 의해 낯선 곳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을 때 당연한 듯 세월이 그 자리를 대신해주었다. 어른 해골인 것은 분명했다. 선두에서 길을 열던 일본 남자였거나 뒤꽁무니에서 뒤처짐을 반복하던 일본 노모일지 모를, 해골을 놓지 못하고 깡마른 여자의 발길은 바빠졌다. 모두들 그렇게 한세상을 다녀갔으리라. 장마철을 갓 넘긴 자호천은 햇살이 밝아서 보현산 능선 따라 그림자를 실어 보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들녘은 일열로 줄을 세우고 애기똥풀, 여뀌, 고마리, 뱀딸기, 개망초, 며느리밑씻개 같은 야생초들이 곳곳에서 군락을 만들어 자연으로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깡마른 여자에겐 소원이 있었다. 자신의 몸속에서 몸집을 키우는 생명을 위해 둥근 배를 갖고 싶었다. 그래서 뒤뚱거리며 걷기도 하고 입덧으로 울컥거리며 물풀 같은 어린 생명을 잉태하고 싶었다. 해골을 손에 쥐고 이런 발상이 가당키나 한지, 너무 헛웃음이 나왔지만 온몸이 뜨거워지는 발정은 숨길 수 없었다. -계속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4-09-08 02:23:11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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