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8)남자가 잠깐 망설이는 사이 깡마른 여자는, 울돌목에서 빠져나온 완만한 자호천 줄기에 시선이 닿았다. 놀랍게도 평정을 잃지 않는 연꽃들이 불쑥불쑥 자라나 세상과 인연을 맺으려고 뿌리로 버티고 있었다. 연꽃을 에워싼 물살은 순하고 완만했다. 지금 낯선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자신의 심정과 불일치하더라도, 왠지 벅차올랐다. 어느 틈바구니에서도 그래도 살만하다면 기필코 생명력으로 보상받으려는 악착같은 면과, 어느새 동조해버린 자신이 또렷해졌다. 저 남자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이 시위라도 하듯, 좁은 일인용 텐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마치 자신이 쳐놓은 텐트처럼 입구에 있는 발 매트에 신발을 벗었다. 이번에는 남자의 놀란 눈을 무시하고 텐트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약속된 것처럼 남자의 뚜렷한 제지는 없었다. 텐트 족들 사이에 극히 어렵지만, 한 번쯤 당첨행운이 오늘 남자에게 찾아왔다고 여겼을 뿐 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헛기침도 했다. 남자도 텐트 안으로 구겨져 들어와 최대한 텐트 지지대를 넓혔다. 어우러질 공간이 더 생겨났다고 느껴졌다. 아무리 초면일지라도 남녀가 좁은 공간 안에 숨소리가 맞닿을 수 있다면 다른 말이 필요할까. 이 공간 안에 들어오기까지 두 사람의 외로움은 극에 달해야 한다. 설명도 이해도 필요 없는 절실함이 목젖에 닿아야 한다. 그래야 한판 몸의 섞임이 순조로운 질펀함으로 이어질 것이다. 남자가 안경을 벗었다. 그것을 신호로 깡마른 여자는 과감하게 남자의 품에 몸을 던졌다. 폭염으로 익어있는 모래사장은 두 겹, 세 겹으로 열기를 포장하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바비큐파티에, 솥뚜껑삼겹살구이에, 훈제 생선요리가 캠핑장에 가득했지만 유독 그날따라 하나 뿐인 일인용 텐트는 조용했다. 아니 조용한 것이 아니라 그 안은 뜨겁고 맹렬했고 요동치고 있었다. 일행이 아니기에 아무도 그 안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몇 번 들썩거리는 텐트를 들키지 않으려고 자리를 가운데를 옮겨가며 집중한 것 외엔 캠핑장 구성 인원들은 서로 승리했다고 믿었다. 텐트 밖은, 탁 트인 곳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배를 채워 좋았다고 했다. 텐트 안의 깡마른 여자와 남자는, 몸이 맞는 사람과 욕정을 채워 좋았다고 했다. 한 공간에서 색다른 형태로 만족을 했지만 결승점에서 맛볼 수 있는 평가는 쉽게 판정하기 어려웠다. 얼마나 더 간절함을 앞세웠는가에 따라 서로의 상황에서 달라질 것이다. 다만 캠핑장 전체에 퍼진 후각적인 음식냄새와 홀로서기 일인용 텐트에서 시각적으로 쿨렁거리는 움직임은 교차점이 없었다. 서로의 평행선을 타고 땅거미 지는 저녁시간 때에 주인공처럼 누볐을 뿐이었다. 캠핑장 안에 음식냄새도 시들해졌을 때, 몇 번을 더한 욕정도 시들해졌다. 깡마른 여자가 옷매무새를 고치며 폴리에스터 재질로 만든 텐트 천에 어깨를 기대고 앉았다. 생각보다 팽팽하면서 튼튼하다고 느꼈다. 남자가 겸연쩍게 팔베개를 하며 엷은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제야 착한 남자 같아서 고마웠다. 자신의 난자에 착상하기 위한 남자의 정자는 굴곡 없는 한사람으로부터 사정되길, 원했다. 자궁 내벽에 착상한 순간부터 파노라마는 펼쳐지겠지만 순탄하게 성장해서 세상에 온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뒷전으로 밀려난 삶을 앞전으로 밀어 올리는 첫 번째가 임신이라 생각되어진 깡마른 여자는 어디에서 그런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는지 마침내 실행에 옮기고 말았다. 착상이 되고 안 되고는 그다음에 맡길 뿐이었다. 남자의 통성명을 묻지 않았다. 어디에서 왔는지도 묻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자신의 자궁을 건드려, 착상된 생명체의 남자라고 기억하고 싶었다. 고맙게도 남자는 침묵해주었다. 뜻을 같이한 동지처럼 눈으로 배웅하며, 텐트 밖을 나서는 깡마른 여자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않았다. -계속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4-10-10 04:21:51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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