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영천에는 특별한 울림이 있다.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국립영천호국원 영천대첩비 앞에는 태극기가 청명하게 펄럭이고, 영천전투를 기억하고 기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모여든다. 그리고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 앞에 깊이 고개 숙인다.국립영천호국원에서 근무하면서 매일 마주하는 영천대첩비를 바라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이곳에서 일어난 역사를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국군과 유엔군은 계속해서 밀려났고, 마침내 낙동강을 중심으로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게 되었다.그 가운데 영천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대구와 경주, 포항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북한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대구를 점령하기 위해 영천을 공격했다.1950년 9월 5일 시작된 영천전투는 9월 13일까지 9일 동안 치열하게 이어졌다. 국군 제8사단을 중심으로 한 우리 군은 북한군 제15사단의 거센 공격에 맞서 영천을 지켜냈다. 대한민국의 사수와 반격의 기틀을 마련한,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른 9일간의 혈투였다.그러나 역사를 단지 숫자와 작전의 결과만으로 기억해서는 안된다.그 피 말리는 9일 동안 누군가는 가족의 품에 돌아가지 못했고, 누군가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의 이면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이 서려 있다.그렇기에 영천대첩비는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다. 그곳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기억의 공간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영천의 평온한 일상 속에서, 76년 전 이땅에서 총성이 울리고 젊은 장병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표이기도 하다.매년 9월이 오면 국립영천호국원에서는 영천전투 승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호국영령의 넋을 추모하는 ‘영천대첩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올해는 오는 9월 9일, 그 뜻깊은 추모의 자리가 마련된다.해마다 돌아오는 날이지만, 이날이 가지는 역사적 무게는 결코 가벼워질 수 없다.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켜켜이 쌓여 있는 이곳에서 열리는 기념행사가 세대를 넘어 우리 모두가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영천전투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승리를 기념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날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일이자,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는 일이다.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는 한, 그들의 희생은 결코 지나간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결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가슴 깊이 새겨본다. 오늘도 나는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영천대첩비의 장엄한 기상을 바라보며,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한층 더 무겁고 깊게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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