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임진왜란 당시 나라의 위기 앞에서 스스로 일어나 영천성을 되찾았던 의병들의 호국정신이 434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영천시민들 앞에 되살아났다.영천시는 지난 2일 시민회관 스타홀에서 ‘임란영천성수복대첩 434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임진왜란 초기 영천성 탈환을 이끌었던 지역 의병들의 희생과 항전정신을 되새겼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역사 기념식을 넘어 영천이 간직한 호국의 역사를 시민과 공유하고 문화적 자산으로 계승하기 위해 마련됐다.특히 이날 기념식과 연계해 영천역사박물관(관장 천진기)이 선보인 ‘갑오무과 영천별시’ 특별기획전도 시민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전시는 1594년(선조 27년) 정월 영천에서 시행된 ‘갑오년 무과 별시’를 중심으로 당시 무과 급제자 418명 중 영천 출신 합격자 38명을 집중 조명했다.제공된 문헌 및 전시 자료에 따르면, 백암 김응택의『백암실기』에는 1594년 1월 25일 영천에서 별시가 실행되었음이 기록되어 있으며, 영천과 신령 출신 37명이 합격한 내용 등이 자세히 전해진다. 당시 방어사의 공훈 장계가 미처 올라가지 못해 시험에 직접 응시하지 못한 인물의 안타까운 사연 등 임진왜란 와중 영천에서 치러진 무과의 생생한 정황이 담겼다.나아가 이번 전시를 통해 영천에서 치러진 과거 시험이 총 2회였음이 밝혀져 의미를 더했다. 1594년 ‘갑오무과 별시’에 이어 1672년 치러진 ‘임자년 무과초시 방목’이 공개되었는데, 당시 영천 출신 이재중이 초시에 입격한 뒤 이후 전시까지 합격한 기록이 확인되면서 영천이 조선시대 지역 무과 시험의 중요한 거점이었음을 입증했다.이번 기획전은 국내 사료를 넘어 명나라와 일본의 기록 문서까지 대거 공개해 영천성 전투의 국제적 위상을 재조명했다.『선조실록』에 수록된 명나라 외교 문서(1592년 9월 15일 자 전투 기록)와 일본에서 편찬된『회본조선정벌기』의 영천성 전투 기록은 수복대첩이 단순한 지역 전승을 넘어 동아시아 역사 속 중요 사건이었음을 증명한다.천진기 영천역사박물관장은 “조선왕조실록과 백사별집에서 영천성 전투를 이순신의 명량대첩과 더불어 최고의 전투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며 “영천만의 우수한 역사·문화 콘텐츠를 적극 활용해 학생과 청년, 시민 모두가 함께하는 문화축제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영천역사박물관은 앞으로도 영천성수복대첩의 역사적 의미를 널리 알리는 한편, 관련 사료와 인물을 지속 발굴해 시민 참여형 역사문화 콘텐츠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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