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열리는 인사청문회는 본래 공직자의 자질과 철학을 국민 앞에서 검증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 청문회는 어느 순간부터 후보자의 재산과 가족을 샅샅이 뒤지는 도덕성 심문장으로 굳어졌습니다. 아파트 증여, 가족 간 거래, 자녀와 친인척, 특혜와 청탁. 정권이 바뀌어도, 후보자의 얼굴이 달라져도 이 단어들은 어김없이 되돌아옵니다. 추석전의 청문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낙마한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는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 과정에서 식약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 배우자와 자녀가 근무한 사회적협동조합에 대한 특혜 의혹, 관련 제약회사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의 아들이 의원실에서 근무한 논란까지 줄줄이 제기됐습니다. 후보자는 정당한 민원이었을 뿐 특혜는 없었다며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사실관계는 엄정하게 가려져야 합니다. 다만 국민이 묻는 것은 법적 유무죄 이전의 상식과 염치입니다.다른 후보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장기 보유와 실거주 문제, 부동산과 세금 논란, 가족의 특별공급 자격 취득 문제, 주택 매입 과정의 가족 자금 동원, 가족 간 부동산 거래 의혹이 여러 후보자에게서 되풀이됐습니다. 이쯤 되면 몇몇 개인의 흠결이 아니라 지도층 전반에 스며든 구조적 불감증이라 불러야 옳습니다. 그 사이 정책과 능력 검증은 뒷전으로 밀려 맹탕 청문회라는 비판이 나오고, 청문회장에 서 보지도 못한 채 겸직 논란 끝에 물러난 후보자까지 생겼습니다.국민의 삶은 어떤가요. 세금을 며칠만 늦게 내도 가산세가 붙습니다. 부모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청년은 수십 년짜리 대출을 짊어지고서야 집 한 칸을 마련합니다. 이자 계산기를 두드리며 밤잠을 설치는 가장, 자녀 학원비를 줄이고, 노후를 준비하는 중장년에게 가족 간 증여와 거래를 둘러싼 해명은 다른 세상의 언어처럼 들립니다. 규칙과 원칙에 맞춰 하루하루를 버텨 온 이들에게 “불법은 아니다”, “몰랐다”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차라리 모욕입니다. 법의 문턱을 넘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덕적 결백의 증명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공직은 특권이 아니라 언제나 더 무거운 책임입니다. 남보다 높은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남보다 엄격한 잣대를 기꺼이 감수해야 합니다. 얼굴은 두껍게, 속은 씨커멓게 처신하는 후흑의 처세가 공직의 미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국민에게 공정과 절제를 요구하려면 먼저 자신과 가족의 삶이 그 기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요구는 공허한 훈계에 불과하지요. 서민들 입에서는 “보고 배울 게 너무 많다”는 자조가 흘러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직하게 살아온 이들이 삼켜야 했던 쓰디 쓴 탄식입니다.이제 국민의 실망은 절망에 가까운 체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성실하게 사는 사람만 손해라는 허탈감, 노력해도 저 높은 곳의 사다리에는 닿을 수 없다는 냉소는 공동체의 신뢰를 갉아먹는 가장 값비싼 사회적 비용입니다. 지도층의 부도덕이 반복될수록 시민들은 법과 원칙 자체를 믿지 않게 되고, 그 불신은 결국 사회 전체의 규범을 무너뜨립니다.해법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정치권은 지명 단계에서부터 재산 형성 과정과 가족 관련 의혹을 엄격히 걸러내는 최소한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청문회 이전에 재산과 세금, 가족 관련 자료를 충분히 공개하고 검증하는 절차를 강화하고,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해명이 부실한 후보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청문회가 도덕성 공방에 매몰되지 않고, 정책과 능력을 검증하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도층 스스로 낮은 자세로 성찰해야 합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흠결 없는 성인군자가 아니라 부끄러움을 아는 공직자입니다. 도덕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어떤 개혁도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