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바라밀의 세 번째는 인욕(忍辱)바라밀입니다. 일반의 사전적 의미로 욕(辱)은 ‘부끄럽고 불명예스럽다’라는 뜻으로, 명예나 체면이 손상되었음을 나타내는 형용사입니다. 자신의 행동이나 상황이 수치스럽거나 불명예스러운 상태를 나타낼 때 사용되지요. 명예가 중시되던 과거 사회에서는 수치심이 중요한 도덕의 기준이 되었으나 요즘은 권력이나 재물 앞에서 뻔뻔해야 소위 ’사회적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라의 주요 권력자들이나 사회 지도자들의 모습에서 수치(羞恥)를 아는 이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현실입니다. 일부 지역의 민선 단체장들이 매관매직을 일삼으면서 너무도 당당한 모습이나 어떤 국회의원의 행태를 볼라치면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시정잡배보다 못한 언행을 일삼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사람, 수치를 모르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하거나 배려할 줄 모릅니다. 인간관계에서 참으로 경계해야 할 사람들입니다.불교에서는 욕(辱)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나의 내면을 보느냐, 타인을 보느냐는 차이일 것입니다. 어떤 화나는 일을 당한 경우, 전자는 일어나는 마음을 살펴 추스르려 하고 후자는 상대 때문에 생긴 일이라 비난하려 듭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자는 당연히 자기관리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을 살펴봅시다. 어떤 잘못된 행위를 한 경우, 다른 사람에게 지적을 당하거나 스스로 살펴 부끄러워지면 화가 납니다. 어떤 난관에 부딪치거나 일이 잘 안 풀려도 화가 납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견디는 것을 인욕이라 합니다. 인욕은 억지로 감정을 참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동요하지 않는 마음가짐, 참을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 인욕의 핵심이랄 수 있습니다. 인욕 수행이 익으면 나와 다른 생각이나 행동이 있더라도 쉽게 판단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그 차이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화가 일어날 때 감정을 조절하여 분노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힘이 생깁니다. 마음의 평정을 지키고 어려움과 고통을 견딜 줄 알며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생깁니다. 신체적 고통, 질병, 재앙이나 재해 등의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불평하지 않고 감내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칭찬하거나 비난할 때 휩쓸리지 않고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다가 그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화가 일어납니다. 마음을 살펴 고요해지는 것도 인욕바라밀이라 할 수 있겠지요.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번뇌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인욕바라밀 수행입니다. 개인적으로 수행자임을 자처하는 제게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암(癌)이라는 병이 치료 여부를 떠나서 여러 가지로 인욕바라밀 수행의 좋은 방편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핍박으로 나라를 잃고 인도로 망명하여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던 티베트의 위대한 스승 달라이라마는 언제나 중국의 지도자는 자신의 선생이며, 마오쩌둥은 가장 위대한 인욕의 스승이라고 말씀하셨다지요. 이 세상의 불편부당한 모든 현상이 곧 수행의 방편임을 알아차리고 휩쓸리지 않는 그 자리가 인욕바라밀의 공부 자리입니다.정환봉의사 공훈록1905년 경상북도 영천군 등지에서 군량미 1백석과 오백냥을 군자금으로 제공했다. 또한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해 필묵상으로 변장하고 각지를 다니며 일본군과 관련된 지역을 정탐하고 기밀정보를 알아냈다. 물자보급에 노력하며 의진이 원활한 전투를 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이훈구의사 공훈록경상북도 경주 출신이다. 1906년 3월 중추원 의관 정환직(鄭煥直)이 고종의 밀지를 받고 아들 정용기(鄭鏞基)와 함께 영천을 중심으로 거병한 산남의진에 참여했다. 이훈구는 지방 참모로 지명되어 의병 활동을 지원하였다. 병력을 모집하여 의병부대에 합류시켰고 군량미(軍糧米)를 원조했다. 1915년 7월 15일 산남의진의 연습장(練習將)이었던 우재룡(禹在龍)이 박상진(朴尙鎭)·채기중(蔡基中)·김한종(金漢鍾) 등과 함께 대구 달성공원(達城公園)에서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를 조직했다. 이훈구는 우재룡·권영만을 통해 광복회를 후원하였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이순구의사 공훈록1906년 4월 정용기(鄭鏞基)·이한구(李韓久)의 산남의진(山南義陣)이 조직되자 이에 입대하여 주로 통신·정찰의 책임을 맡고 의진 밖에서 이세기(李世紀)·남우팔(南禹八)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활약하였다. 의병장 정용기가 순국한 후 그의 부친 정환직(鄭煥直)이 의진을 통솔하게 되자 그 막하에서 활약하던 중 1908년 의성 구봉산(義城 九峰山)에서 적과 접전하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고 불구가 되었다. 1912년 만주 반석현(盤石縣)에서 이상룡(李相龍)을 만나고 우재룡(禹在龍)의 소개를 받아 광복회(光復會)에 가입하여 활약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이용훈자는 윤오이고 청안군 시호 충원공의 후손이며 두촌 팽수의 10세손이다. 성품이 온순하고 두텁고 부모님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로 고향마을의 칭송을 받았다. 산남의진이 창의하던 초기 어머니의 병환으로 부득이 의진을 따르지 못하였다. 동엄공이 영천에서 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김석구, 권치상 등과 더불어 한밤중에 영천으로 와서 동엄공의 시신을 넣은 관구(棺柩)를 받들고 공의 고향집으로 돌아왔다.〈원문〉李容勳은 字允吾요 淸安郡諡忠元公之後요 杜村彭壽之十世孫也라 性이 溫厚하고 以孝友로 受鄕里之讚이라 起事之日에 以母病으로 不得從하고 聞東广鄭公被害于永川하고 與金錫龜權致祥等으로 星夜赴永川하야 奉棺柩而歸하다 <山南倡義誌 卷下76p>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6-10-18 06:17:09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동정
초대석
데스크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경북동부신문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8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64 / 등록일 : 2003-06-10
발행인: 김형산 / 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보운 / 편집국장: 최병식 / 논설주간 조충래
mail: d3388100@hanmail.net / Tel: 054-338-8100 / Fax : 054-338-8130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