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구리(36)굼돔부락 촌장 벽서는 큰비녀상궁 유하의 국모 최종 간택을 통보 받았다. 가급적 첫째 보명이거나 그래도 둘째 탄순의 선택을 바랐지만 셋째 혜윰의 최종 통보에 약간은 난감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 느꼈다. 눈송이가 잦아지는 것을 틈타 큰비녀상궁과 작은 상궁이 길을 재촉하는 것을 대문 처마 곁에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지금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지붕의 서까래가 기둥 바깥으로 뻗어 나와서 만들어낸 처마가 전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몸 선(線)이 시시각각으로 작아졌고, 지엄하게 만물로 쌓이는 눈은 더 쌓이지 않을 만큼 가속이 줄어들고 있었다.평상시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홑처마와 겹처마를 번갈아 보다가 우진각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직사각형의 경사면에 용마루에서 모이는 지붕의 형태로 몇 해째 살고 있는 자신의 집이 새삼 뿌듯하게 다가왔다. 올려다본 하늘은 콩알만 한 눈송이들로 들어차서 풍운의 뜻을 경각(硬角)으로 새겨놓고 있다고 믿었다. 정녕 양지부락과 두들부락과 대태부락과 평지부락을 제치고 굼돔부락이 으뜸으로 앞설 수 있을까. 하늘은 앞서가라고 저렇게 등 떠밀고 있는데, 운이 트일 조짐은 지금이 기회일 것이다. 국모 간택에 따른 딸년을 등에 업고 합하(閤下)가 기거하는 양지부락에서 서서히 이동하는 굼돔부락의 광명을 꿈꾸는 것이 당연지사일터.세 딸을 안채로 불렀다. 이미 짐작한 세 딸은 경망스럽지 않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쩌면 제각각 자신의 간택을 확신하고 있었다. 너희들보다 언니인 내가. 언니 동생보다 둘째인 내가. 언니들보다 막내인 내가. 벽서가 앉아라고 손짓했다. 아랫목에서 배여 나오는 구들장 온기가 세 딸의 뺨을 발그레 물들게 했다. 물론 세 딸을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됨됨이를 평가하기에는, 저마다의 매력 앞에서 소용없지만 아비의 마음으로 발표해야 함이 죽기보다 싫다는 난관까지 온 셈이었다. 시선을 들창으로 두고 세 딸을 향해 온힘으로 입을 열었다. “딸들아, 이제는 들어야 할 때다. 뒷간에 앉아 근심을 버리듯 지금 간택된 누구와, 간택되지 않은 누구와도 갈라치기는 금물이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한, 너희들은 굵은 줄이 이어진 채 살아가는 자매다. 어디 있든 찾을 수 있게 줄에는 방울이 달려 있어 같은 편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행동할 때다. 내가 지금 호명하는 한사람이 국모의 부름을 받았고, 두 명은 받지 못했다. 서로 시기와 질투 없이 상부상조하는 마음으로 축복해라. 그것이 훗날을 도모하는 꽃줄기가 될 터이니. 셋째 혜윰이 너다. 보명과 탄순은 이제 동생이기 전에 국모라는 사실을 한순간도 놓치지 마라. 혜윰은 국모이기 전에 든든하게 받쳐줄 언니들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놓치지 마라.  이제는 새겨둘 때다. 굼돔부락 촌장으로 한세월을 마감하는 가했다. 다시 우뚝 설 기회가 도래(到來)했다. 칼과 창이 앞서지 않아도 굼돔부락의 깃발은 펄럭일 것이다. 세상은 다시 굼돔부락을 기억할 것이고 촌장 벽서의 호령 앞에 떨게 될 것이다. 이제 두마국(國)은 원치 않아도 벽서의 부각(浮刻)을 내심 반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딸들아, 나는 너희들의 아비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이리도 알차게 꿈꾸는지 알 것도 같다. 앞으로 열린 세월이 그쪽을 향하라 재촉한다. 너희들도 물러서지 마라. 선봉은 셋째 혜윰이 국모가 되어 달릴 것이고 보명과 탄순은 낙오되지 않고 따를 것이다. 나는 큰북을 울리며 너희들과 함께 할 것이다. 한마디도 허투루 듣지 마라. 이제 두마국은 우리의 세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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