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추석 연휴, 시골집 마당 평상에서 오간 이야기는 풍년 소식도 쌀값 걱정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땅은 어떻게 되는 거냐”는 우려섞인 물음이 송편보다 먼저 상 위에 올랐습니다. 지난 여름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가 순박한 농촌에 던진 파장이 명절 밥상에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발단은 7월 말 발표된 농지 기본조사였습니다. 농식품부는 그 결과 1996년 이후 취득한 농지의 약 27%가 불법 임대차나 무단 휴경 등 농지법 위반이 의심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에 농사를 짓지 않는 농지의 처분 명령을 강화한 개정 농지법이 8월 말 시행되면서, 농민들은 “나라가 땅을 빼앗아 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에 휩쌓였습니다. 조사의 취지와 맥락은 빠진 채 위반 비율과 이행강제금 규정만 먼저 전해진 탓이었습니다.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최근 이런 반응을 ‘가짜뉴스’, ‘카더라 통신’이라 짚었습니다. 조사의 목적은 투기를 걸러내고 30년 묵은 제도를 현실에 맞게 고치기 위한 기초 데이터를 마련하는 것이며, 처음부터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장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해라고 규정하는 것만으로 불안이 가라앉지는 않습니다. 그 불안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농민이 정책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만 대접받아 온 오랜 경험 위에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지난달 21일 당정이 내놓은 보완책도 같은 맥락에서 읽힙니다. 관행적 위반은 일률적 처분 대상이 아니며, 연내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정상화·양성화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방향은 옳습니다. 다만 혼란이 커진 뒤에야 나온 사후 수습이라는 한계는 분명합니다. 국·과장 70여 명이 추석 전 전국 시·군을 돌며 취지를 설명했다지만, 설명은 이미 정해진 결론을 전하는 일이지 현장의 사정을 묻는 일이 아닙니다.농민에게 농지는 단순한 땅이 아닙니다. 생업의 터전이자, 부모에게 물려받아 자식에게 넘겨줄 삶의 기록이며, 노후를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농사지을 사람은 줄고 나이는 많아졌으며, 쉬는 땅과 상속 농지는 늘었습니다. 송 장관의 진단처럼 농촌의 현실은 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그 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매일 그 땅에 서 있는 농민입니다. 어디까지가 관행이고 어디부터가 투기인지, 고령 농가의 임대와 위탁은 어떻게 양성화할 것인지, 그 기준을 책상이 아니라 논두렁에서 길어 올려야 합니다.물론 투기는 엄단해야 마땅합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거짓으로 농지를 취득하거나 농업법인이 부동산업을 영위하는 행태까지 감싸자는 사람은 투기업자를 빼고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다만 투기꾼을 잡겠다는 정책이 정직한 농민의 가슴에 먼저 못을 박아서는 곤란하다는 겁니다. 일반적·관행적 위반은 빼고 투기만 가려내겠다는 약속은 현장의 신뢰 없이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농민이 조사의 대상이 아니라 기준을 함께 만드는 파트너가 될 때 비로소 그 약속도 설득력을 얻을 것입니다.내년 상반기에 농지법 개정이 예정돼 있어 농지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여기에는 소유 중심의 경자유전 원칙을 이용·경영 중심으로 풀겠다는 구상이 담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중대한 그림을 그리기 전에 필요한 것은 설명회가 아니라 경청이 우선입니다. 권역별 설명회가 일방적 통보의 자리가 아니라 농민의 요구가 법안 문구에 반영되는 협의의 장이어야 합니다. 특별조치법 논의 과정에도 농민 단체와 고령 농가의 목소리가 반드시 들어가야 법이 현장에서 작동하고, 정책이 사람을 설득할 수가 있습니다.추석 보름달 아래서 농민들이 나눈 말은 아주 소박합니다. 평생 일군 땅을 안심하고 지키며 살게 해 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결국 현장 농민의 목소리를 정책의 출발점에 두지 않는 한, 어떤 보완책도 임시방편 밖에 될 수가 없습니다. 정책의 신뢰는 땅이 아니라 바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