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바라밀의 네 번째는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입니다. 팔정도의 정정진(正精進)이 악(惡)한 것들을 멀리하고 선(善)한 것을 증대시키려는 바른 노력의 소극적 수행이라면, 정진바라밀은 다른 존재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불쌍히 여기며 보살행을 실천하고 이를 위한 자신의 각성과 배움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적극적인 수행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정진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합니다. ①피갑정진(被甲精進)-’갑옷을 입는 정진’의 단계입니다. 보살이 금강처럼 단단한 갑옷을 입고 모든 어려운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뛰어드는 용맹정진을 말합니다. 어떤 고난에도 게으름을 피우거나 의욕을 잃지 않겠다는 정신력을 의미하죠. 달마대사의 9년 면벽, 성철스님의 10년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정진을 하거나, 4면이 모두 벽인 방에 밖에서 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최소 3개월부터 3년 내지 6년 동안 면벽참선하는 ‘무문관(無門關) 수행’ 같은 정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용맹정진은 지금 우리나라 선방에서 하안거와 동안거 결제(結制) 기간 중에 7일이나 15일간의 기간을 정해두고 잠을 자지 않고 참선 수행하는 수좌들의 수행을 일컫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②섭선정진(攝善精進)-’선행을 섭수하는 정진’입니다. 부지런히 착한 가르침과 수행의 선법을 닦고 악행을 고쳐나가는, 게으름 없는 노력의 실천 단계입니다. ③이요정진(利樂精進)-’중생에게 이익과 즐거움을 주는 정진’입니다. 부지런히 중생을 교화하고 이롭게 하여 요익(饒益)하게 하는 게으르지 않는 자비의 실천입니다.정진바라밀은 나를 넘어 세상 전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힘쓰는 보살행의 완성 단계입니다. 그런 만큼 이 정진의 주체는 기쁜 마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하기 싫은데 억지로 낸 무거운 마음으로 노력하는 것은 정진바라밀이 아닙니다.李容勳 義士 略歷(이용훈의사 약력)李容勳(이용훈)은 字(자)는 允吾(윤오) 호(號)는 기암(騎巖)이며 관향은 淸安(청안)이고 高麗(고려) 恭愍王朝(공민왕조) 檢校侍郞(검교시랑) 禮賓寺同正(예빈사동정) 諱(휘) 陽吉(양길)의 후예라 역대세덕은 본집 가장과 행장이 첨부되었기로 생략한다 高宗(고종) 己巳(기사)에 永川郡(영천군) 紫陽里第(자양리제)에서 출생하다 生父(생부)는 李夏彬(이하빈) 生母(생모)는 綾州(능주) 具正喜(구정희)의 따님이라 그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伯父(백부)는 李善彬(이선빈)이오 伯母(백모)는 安東(안동) 權延懋(권연무)의 따님이라 그의 養子(양자)로 되었다 어릴 때 성품이 아담하고 담약이 남다르더니 약관부터 풍도가 점잔하고 마음씨가 착하고 어질며 특히 효제충신에 정신을 두었다 생양가에 모두 부친이 세상을 일찍이 하직하신 것을 철천지한을 하고 생양가 두 분의 모친에 특수한 정성을 다하였고 그의 부친이 본래 六兄弟(6형제)로서 그 끝에 숙부가 빈곤하고 자식이 없었다 그 숙부를 친부같이 받들어서 기구한 운명을 탄식하지 않도록 하였으며 公(공)은 본래 三兄弟(삼형제)로서 우애는 남다르게 돈독하였으나 항상 간구한 소치로 이사를 자주하게 되었다 가는 곳마다 三大小家(3대소가)가 같이 운동되어 한 곳에 거주를 같이하고 있었다 公(공)의 년기가 三十(삼십)세 전후로 될 그 무렵에 벌써 나라 운수가 극도로 불길하여 불칙한 소동이 해마다 일어나서 나라 밖에서는 범같은 적국들이 호시탐탐을 하고 나라 안에는 개 같은 역적놈들이 창귀 행동을 하여 민심이 울분하도록 하니 충담의분이 있는 그 사람들은 모두 나라를 걱정하고 시대를 슬퍼하여 서로 동지를 찾아서 나라를 구원코자 할 그때라 都察使(도찰사) 東广鄭煥直先生(동엄정환직선생)이 三南(삼남)을 순찰할 때에 公(공)이 찾아가서 뵈옵고 사제지의를 결탁코자 하여 승낙을 받았다 光武九年(광무9년) 乙巳年(을사년) 겨울에 왜적들이 우리나라 역적들을 더불고 강제로 五조약을 체결하니 전국상하에 심정이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해 섣달에 동엄선생의 아들 丹吾公(단오공) 鄭鏞基(정용기) 동엄선생의 명령으로서 광무황제의 조서를 받들고 영남에 내려와서 의병을 일으켜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하니 여러 곳에 의열사들이 우레같이 부동되고 그림자같이 따르는지라 公(공)은 남먼저 응종하여 원근에 연락하기를 구차하고 험한 것을 피하지 않고 활동하는 그때에 그의 모친 병환이 위중하므로 진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에서 친환을 구호하면서 기밀한 일을 항상 진중에 연락하였다 그때의 의병진 이름은 山南義陣(산남의진)이라 하고 단오공 정용기를 大將(대장)으로 추대하고 인원수는 각지 유격대를 합산하면 數千名(수천명) 되었다 丙午(병오) 丁未(정미) 양년간 영남지방에서 특수한 활약을 하였다 그렇게 하다가 隆熙元年(융희원년) 丁未(정미) 九月一日(9월1일) 입암접전에서 대장 단오공과 그 부하 아장 몇 분이 같이 순절하고 동엄선생이 대군을 통솔하고 영남 일대 여러 고을에 싸워서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해 十一月十六日(11월16일)에 선생이 永川(영천)에서 순절하다 이날에 갑자기 영천 남쪽 하늘에 우레소리가 크게 일어나니 이것은 선생이 순절한 비보를 전국에 알려주는 것 같이 되었다 동엄선생이 순절하였단 소문이 자양면에 들어오자 紫陽面(자양면)은 선생이 출신한 향토이라 자양면민들은 선생 시체를 반구코자 하여 암암리에 운동이 일어났다 면민대표로 내보낼 사람들을 초선하니 李容勳(이용훈) 김석구(金錫龜) 權致祥(권치상) 세 사람이 선정되었다 公(공)은 權金二友(권김이우)를 더불고 영천읍에 나아가서 선생의 시체를 붙잡고 크게 울부짖으니 성중에 남녀노소가 모두 방성통곡하더라 그러자 적병이 와서 시체염습하는 사람들을 인치하는지라 公(공)은 적진에 들어가서 심문에 대하여 강개한 의기로서 응답하니 적장도 눈물을 머금고 허락하더라 읍중 인부를 동원시켜 운반하여 성밖에 나오니 길가에 있는 동리들이 모두 차례로 운상에 교대하고 주식 영업하는 사람들은 의례히 운상 인원에 대하여 식사를 제공하더라 선생의 시체를 檢丹東山(검단동산)에 임시 權厝(권조)하다이 뒤로부터 公(공)이 진중에 들어가서 數年(수년)간 활동하다가 끝내에 국토는 적국의 영토가 되고 상종하던 동지들은 대부분 전사 또는 옥사로 전말되고 생존한 사람들은 해내 해외로 망명하여 지하운동을 시작하다 公(공)은 산중에 은적하여 음양복서지술로서 세월을 보내면서 이것으로서 상종하는 동지의 향배를 인책하다가 庚辰(경진) 十月二十日(10월20일)에 광복의 청천을 못보고 한스럽게도 七十二歲(72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나갔다 (迎日郡日月鄕誌(영일군일월향지)에 기재된 公(공) 의 사적을 참고로 左(좌)에 기록한다) 李容勳(이용훈)은 字(자)는 允吾(윤오) 호(號)는 기암(騎巖) 貫(관)은 淸安(청안) 高宗(고종) 己巳(기사)에 竹長(죽장)에서 出生(출생)하다 山南義陣(산남의진) 鄭大將(정대장) 父子(부자) 麾下(휘하)에 忠戰(충전)하다 鄭煥直大將(정환직대장) 殉國(순국)하매 그 시체를 반구하다.<山南義陣遺史394~3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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