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게으른 눈으로 휴대폰을 찾았다. 거실 바닥 저쪽에 있었다. 거리를 가늠했다. 다섯 보폭 안에 있었다. 허지만 지금 남자에게서 다섯 보폭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거리처럼 아득했다. 일어선다는 생각도 에너지도 모두 방전된 듯 했다. 굼벵이처럼 남자가 꿈틀거렸다. 그러면서 눈가에촉촉하게 맺힌 눈물을 느꼈다. 절대 울지 않겠다고 머리를 벽에 찧은 적도 있었다. 눈물은 고여 들었다. 통증때문이라고 애써 이마에 난 혹을 탓했다. 혹이 가라앉아도 울컥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야만 했다. 초침 소리가 남자의 가슴에 닿았다.차마 말 못할 혼란 때문이었다. 남자는 뻗어야 할 뿌리에서 이미 엉켜있었다. 한 가닥 남은 힘으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마치 태초의 인간이 직립보행을 위해 진화하는 과정을 담은 슬라이드처럼 매끄럽지못하게 일어섰다.   며칠을 굶었을까. 중요하지 않았다. 며칠을 한 톨의 의욕도 없이 발코니까지 와서 구겨져 있었던가. 그것도 보석처럼 빛나는 스물일곱살의 나이에. 가장 단단한 등껍질을 하고 쉼 없이 깃발을 향해 나아가야하는 이 청춘을 어찌하란 말인가. 휴대폰을 집어 들고 거친 한숨을 쉬었다. 답답한 가슴을 손바닥으로 몇 번 쳤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는 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부재중이었다. 혀끝이 타들어 가듯 목이 말랐다. 정수기에 컵을 미처 받쳐두지 않고 보턴을 눌렀다. 바닥으로 물이 튀었다. 튀고 있는 물방울을 향해 입을 벌렸다. 작은 청량감이 입안에서 번지고 있었다. 바닥에 고인 물을 손가락으로 물 베기를 하며 무엇인가 기다리기 위한 자세로 앉았다. 가부좌인 듯 했다. 더 절실했고 더 희망적이었고 삶의 근원을 들춰내고 싶은 간절함이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무수한 소리의 원혼들이 방안을 맴돌고 그 가운데 남자는 곧고 나직하게 앉아있었다. 한 곳으로 모아지지 않은 시선들이 종으로 횡으로 떠돌다가 수명을 다한 듯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고, 이 거대한 딜레마에서 누군가 남자를 향해 돌진해와 손톱으로 박박 긁어대고 있었다. 얼굴을 돌리자 먼 곳의 성당에서 스테인 글라스에 반사되는 보석 같은 빛들이 천진하게 흩어지는 게 보였다. 삶의 연장선상에 여전히 놓여진 채로 있는 것일까.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 생의 가파름일까. 지금 자신의 의지만으로 삶의 진도를 나가기엔 너무 두려웠다. 차라리 삶을 내려놓고 싶었다. 질서는 이미 뒤죽박죽되었고 균형은 삐걱거렸다. 나사못 하나로 수리되어 움직이기엔 고장의 강도는 컸다. 남자의 힘으로 버티기에는 세상은 이미 등을 돌렸다. 휴대폰에서 벨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천천히 남자는 통화 보턴을 눌렀다. ㅡ옥상에 빨래 널고 오니까 네게 전화 왔지 뭐야. 무슨 반찬 해주랴?  ㅡ엄마.목이 잠겼다.ㅡ그래, 그래 다 큰 녀석이 또 울긴,말해. 엄마가 뭐든 다 들어줄게.ㅡ엄마, 나......이번엔 정말 수술해야겠어.어머니도 말이 없었다. 아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인정하고 있는 침묵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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