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가 다시 문이 열린 지 서른 다섯 해 째입니다. 강산이 세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 동안,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동네도 수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그렇게 곱지가 않았습니다. 일탈과 비위를 저지른 지방의원을 심판하기는 커녕 다시 그곳으로 보내는 선택을 한 것은 지방자치에 대한 신뢰를 뿌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과연 세금 들여 지방의회를 유지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회의론이 고개를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시 한번 지방의회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삶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날카롭고도 따뜻한 무기가 바로 그들의 손에 쥐어진 ‘입법권’, 즉 조례 제정권이기 때문입니다.우리 역사는 기억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1991년 청주시의회 박종구 의원이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통과시켰던 ‘행정정보 공개 조례’는 5년 뒤 국회의 법률 제정으로 이어지며 대한민국 전역의 ‘뉴노멀’이 되었습니다. 2003년 안산시의회 이창수 의원이 동료 의원들의 조직적 저항을 뚫고 관철한 ‘업무추진비 공개 조례’는 전국 지자체장의 쌈짓돈 같았던 예산 집행을 감시하는 최소한의 제동장치가 되었습니다. 거창군의 학교급식 조례는 ‘무상급식’의 씨앗이 되었고, 부안군의 치매 환자 지원 조례는 돌봄이 국가의 책임이라는 사회적 화두를 던졌지요. 이 위대한 변화들은 중앙정부의 세련된 기획가들이 아닌, 지역 주민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보던 평범한 지방의원들의 손끝에서 시작되었습니다.이제 시선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영천으로 돌려봅시다. 곧 출범할 제10대 영천시의회를 향한 주민들의 기대와 우려는 교차합니다.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지금 영천에 필요한 것은 중앙정치의 논리를 대변하는 확성기가 아닙니다. 영천시민들의 구체적인 삶의 고통을 덜어줄 창의적이고 실질적인 조례입니다.냉정하게 되짚어 봅시다. 그동안 우리 지방의회가 보여준 조례 발의의 성적표는 어떠했는가를. 다른 지자체에서 먼저 통과된 조례의 이름과 자구만 바꾸어 내놓는 ‘복붙’식 흉내 내기 입법, 혹은 생색내기용 선심성 조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영천의 비탈진 과수원 밭에서, 텅 빈 구도심의 골목길에서,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아 발을 동동 구르는 젊은 부부의 거실에서 터져 나오는 진짜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조례는 죽은 문서에 불과합니다.이제 곧 의회에 입성할 사람들에게 강력히 촉구합니다. 영천의 당면 과제인 농촌 인력 부족 문제, 청년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한 주거·문화적 대안, 초고령 사회에 걸맞은 촘촘한 복지 안전망 구축 등 영천만의 고유한 현실에 기반한 ‘참신하고 새로운 조례’를 고민해 달라고요. 전국 어느 지자체도 시도하지 못했던 혁신적인 조례를 영천시의회가 먼저 입안하고 의결하여, 지방자치 시대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져야 합니다.35년 전, 청주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울려 퍼졌던 제안 설명의 한 대목은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줍니다.“정보의 공개 제공은 주민의 알권리를 조례로 보장하고 주민의 행사 참여, 사회 참여를 보다 가능하게 하며 정치나 행정에 햇볕을 쐬어 곰팡이가 슬지 않게 함으로써 우리의 민주주의에 인간적인 따스함을 더해주려는 것입니다.”정치와 행정에 햇볕을 쐬어 곰팡이가 슬지 않게 만드는 것, 그리고 우리 삶에 인간적인 따스함을 더하는 것. 이것이 바로 조례가 가진 본연의 힘입니다. 새로 출범할 제10대 의회가 흉내 내기 입법을 넘어, 영천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따뜻한 입법의 선두 주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낡은 관성을 깨부수고 주민의 삶 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는 용기 있는 한 걸음이, 영천을 바꾸고 나아가 대한민국을 바꾸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6-06-13 13:45:53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동정
이 사람
데스크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경북동부신문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8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64 / 등록일 : 2003-06-10
발행인: 김형산 / 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보운 / 편집국장: 최병식 / 논설주간 조충래
mail: d3388100@hanmail.net / Tel: 054-338-8100 / Fax : 054-338-8130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