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교(7) 난간을 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여자에게 모든 시선과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육교로 올라가 손을 잡아줄 시간도 빠듯했고 무엇보다 건장한 체구의 젊은 사람도 하필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탄식과 애통해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사람들 속에 5인승 하이브리드가 버티고 섰습니다. 차가 망가지는 것은 뒷전이고, 높이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아내가 했습니다. 무조건 반사처럼 몸이 먼저 움직이는 아내의 정의감은 급기야 나를 타박했습니다.  “떨어지면 혹시나 삐끗하여 육교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더 다칠지 모르니 사각형 중심점으로 해서 잘 맞춰 봐요.” 크게 잘못한 양, 허둥지둥 차를 이쪽저쪽으로 옮겨가며 나름대로 중심점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누군가 외마디 비명이 화살처럼 날아왔습니다. “떨어진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 지붕으로 둔탁한 마찰음과 통증을 찢어발기는 여자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차안에서 느껴지는 요동은 생각이상으로 크고 선명했습니다. 사람들의 박수소리에 장한 일을 한 뿌듯함은 있었습니다. 방금 도착한 119구급대원은 여자의 부상정도를 파악하며 긴급하게 앰뷸런스로 호송해갔습니다. 들것에 실려 앰뷸런스로 옮겨가는 짧은 과정 속에서 여자의 얼굴을 무심히 쳐다보았습니다. 순간, 십 수 년 전,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던 젊은 날의 열병이 다투어 각인 되었습니다.  “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미경이다.” 입속에서 굴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까 조심스레 아내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오해를 받을 일은 없었지만 치부를 드러내긴 싫었습니다. 마산만 부두에서 반 토막 난 등록금과 할퀴고 지나간 미경에게 받은 상처가 덧난 채로 다가왔습니다. 밖으로 목을 빼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내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길을 막고 있는 차를 치워줘야 하니까 시동을 걸어라 재촉했습니다.  시동을 걸며 사이드 미러로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구급대원의 널찍한 등바닥에 가려진 미경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시험에 으레껏 등장하는 “비슷한 말끼리 줄을 이어시오”가 연상되었습니다. 맞다면 이미경과 박우태가 어떻게 연결되었기에 저토록 질긴 인연으로 끊임없이 보채고 있었을까요. 어느 하늘, 어느 곳에서 어떻게든 만나기 위해 세월도 건너뛰고 장소도 건너 뛴 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치명적으로 다가왔을까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섭고 기이했지만 아내 앞에서는 결코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루프 바 받침대가 휘어지지 않는 것으로 봐선 차 지붕 중심점에 체중이 가해진 것 같았습니다. 물론 지붕은 찌그러졌지만 타고 다닌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긍정적인 아내를 따라 웃고 말았지만 욕실에 들어온 나는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사람을 살렸다는 생각보다 미경을 살렸다는 생각에 만족감은 배가되었습니다. 아내에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에프터’를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 옳았을 겁니다.  순전히 이용당하다 시피 한 미경에게 연민이 웬 말이겠지만 단단하게 비끄러매어진 하나의 매듭 속에 인연 줄이 등장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혼자만의 공간이 보장된 욕실에서 나직하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미경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119로 전화 버턴을 눌렀습니다. 아내가 연속극 재방에 빠져있는 이 시간이 적기입니다.   “육교에서 구출된 여자분 성함은 알고 싶어서 전화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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