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라 여기저기 모임 참석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연말 모임은 보통 망년회, 또는 송년회로 불리는데 지난 온 1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해를 맞을 각오를 다지는 자리가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올해는 망했다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아직 보름 넘게 남았지만, 일찌감치 2024년을 결산하는데 여러군데서 사람들의 탄식이 흘러 나옵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해서, 올해가 작년보다 나았다는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습니다. 최악이었다는 평가 정도만 돌림노래처럼 울립니다.하기는 우리같은 시골에는 농사도 여름 더위가 가을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논이든 밭이든 작황이 나빴더랬습니다. 또 어느 단체도 활동에 필요한 각종 예산이 삭감되는 바람에 훈훈하게 정을 나누던 모임들마저 많이 사라졌습니다. 온갖 이름의 세금과 물가는 인상되었는데, 쌀을 비롯한 곡물 가격은 제자리걸음입니다. 대한민국 변방 농촌의 현실은 곤두박질로 이어져 참담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망한 올해는 깡그리 잊자고 한숨 푹푹 쉬며 송년회를 하지만, 고구마 10개쯤 먹은 것같은 가슴만 답답합니다.최근 개봉한 ‘아침바다 갈매기는’이라는 영화를 보면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요”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지금쯤 어울리는 말인 듯 합니다. 작은 어촌 마을에서 자신의 죽음을 위장해 가며 탈출을 꿈꾸는 젊은 어부의 이야기인데 고된 현실이 적나라하게 담겼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영화 내내 곳곳에서 언성을 높이며 다툽니다. 상처는 쌓이고 빚은 늘고 해결할 방법은 안개 속이니, 분노로 지르는 것은 주먹질이요 슬픔으로 내뻗는 게 발길질입니다. 보통 한마을에서 오랜 세월 부대끼며 지내다 보면, 이웃한 사람들의 자랑거리뿐만 아니라 어둡고 때론 더러운 그림자까지 낮은 담을 넘어 오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이웃끼리 연민과 위로와 격려와 응원이 겹겹이 쌓입니다. 법으로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 작은 마을 사람들 마음입니다.아들 용수가 실종된 후 엄마인 판례씨와, 함께 바다로 나갔던 영국씨의 대화는 거두절미한 선문답에 가깝습니다. 찡그린 얼굴로 투박하게 찌르는 영국씨의 단호한 목청에 맞서는 판례씨의 대결은 곧 터질 고무줄마냥 팽팽합니다. 두 사람의 눈짓과 몸짓에 어촌살이의 고통이 가득 배어 나옵니다. 보는 이도 함께 젖어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지금 농촌의 삶이란게 위에서 본 어촌과 별반 다름이 없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삶의 무게에 지쳐 손익을 계산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으로는 그 사람들의 인권과 행복을 지키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냥 태어난 곳이니 살아왔고, 추억이 있기에 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으니 벌레같은 삶을 또 이어가는 것일 뿐입니다. 퇴락한 줄 알지만, 죽을 수는 없다며 버티고 또 버팁니다. 여기에 도시 살이에 지쳐 돌아온 사람을 하나씩 받아주고 살길 열어 주다보니 함께 마을을 지키고 살아가는 겁니다. 아마 1년 전에도 누구는 경제적 어려움과 희망없는 삶에 지쳐 새로운 삶을 꿈꾸며 시골마을 탈출을 꿈꾸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1년이 지난 지금 이 시간에도 제자리에서 또 그런 꿈을 꿀 것입니다. 우리가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고는 하지만 희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희망이 뭔지를 모른채 한 해를 지탱해준 모든 순간에 감사할 뿐입니다.지역소멸과 저출산 고령화에 인구감소, 빈부격차 같은 우리 문제는 어느 것 하나 달라지지 않고 쪼그라드는 현실 속에 어떤 희망을 다시 가져 볼까요. 그런데 근래에는 정치권마저 우리를 답답하고 힘들게 하네요.12월은 송년회의 달입니다. 사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한해 동안 감사한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고마운 인사를 전하며, 서로 격려하는 중요한 시간들입니다. 그리고 새해를 맞으며 기대와 설렘 속에 행복한 세상을 바라며 희망을 노래해야 하는 판인데 현실이 그렇지 못함에 그저 고개만 숙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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