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난사람, 든사람보다는 된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난사람이 되어야 부자가 되고, 든사람처럼 미사려구를 쓸 줄 알아야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다. 된사람이 의미하는 도덕적 가치는 한쪽 구석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그러기에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인 의리는 중요한 가치가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더욱 보왕삼매론 제6구의 말씀이 가슴에 사무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 하셨느니라.』 오상영자는 경삼이고 벼슬은 참봉이며 본관은 해주이다. 고려조 징사(徵士)공의 후손이다. 서종락이 청송에서 의거(義擧)할 때 도총장이 되어 진두에서 지휘하였으나 일이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몸을 감추었다.〈원문〉吳相泳은 字慶三이요 官參奉이요 海州人이라 勝國徵士公之后라 及徐鍾洛之擧靑松에 爲都摠하야 指揮陣頭라가 至大事無可奈何之境而隱身하다 <山南倡義誌 卷下59p>吳相泳 義士 略歷(오상영 의사 약력)吳相泳(오상영)은 字(자)는 慶三(경삼)이오 號(호)는 旅雲(여운)이며 官職(관직)은 莊陵參奉(장릉참봉)이오 貫鄕(관향)은 海州(해주)이라 그의 家世(가세)는 高麗(고려) 恭愍王朝(공민왕조)에 門下侍郞(문하시랑)으로 魚鳳山中(어봉산중)에서 守節(수절)한 國華(국화)의 十八世孫(18세손)이라 檀紀(단기) 四二一一(4211), 西紀(서기) 一八七八(1878) 高宗(고종) 戊寅(무인) 八月十八日(8월18일)에 慶州府(경주부) 竹長縣(죽장현) 月坪里第(월평리제)에서 父(부) 翼洙(익수) 母(모) 月城崔氏(월성최씨)의 長男(장남)으로 出生(출생)하다 性稟(성품)이 仁厚(인후)하고 또 무술을 좋아하여 어릴 때부터 항간에 놀면서 항상 전투법으로 희롱하더니 漢文(한문)서당에서 글을 배움에 뜻을 戰國史記(전국사기)에 두고 육도삼략 등의 兵書(병서)를 달통하였다 行年(행년) 十五歲(15세)에 靑松府(청송부) 安德面(안덕면)에 이주하여 매양 전렵으로 세월을 보내더니 그때부터 우리나라는 운수 불길하게 되어 壬辰(임진)왜란 이후로 항상 조심하던 왜놈들에게 또다시 침략을 받으면서 오다가 소위 五條約(오조약)이란 勒約(늑약)으로서 國權(국권)을 송두리째 강탈을 당하니 우리민족에 격동되는 분기는 以上(이상)으로서 더 참을 수는 없었다 檀紀(단기) 四二三八(4238), 西紀(서기) 一九○五(1905) 光武九年(광무구년) 乙巳(을사) 十二月(십이월)에 侍從臣(시종신) 東广先生(동엄선생) 鄭煥直(정환직)은 光武皇帝(광무황제)의 密詔(밀조)를 받들고 그의 아들 丹吾公(단오공) 鏞基(용기)를 嶺南(영남)에 내려 보내서 義兵(의병)을 일으켜서 왜적들을 격퇴하려고 하는 소문이 遠近(원근)에 떨쳤다 公(공)은 그때에 靑壯年(청장년)으로 二十九歲(이십구세) 되던 해 丙午年(병오년)이라 永川(영천)에서 山南義陣(산남의진)이 일어난 연락을 받고 靑松郡內(청송군내)의 모든 要人(요인)들을 더불고 山下(산하)에 있는 炮手(포수)들을 모집하여 陣中(진중)으로 들여보내고 民間(민간)에 原料(원료)를 수집하여 화약과 차란과 화승을 제조하고 엽총과 군복과 신발 등을 수집하여 陣中(진중)으로 보내서 丙午(병오) 丁未(정미) 兩年(양년)간에 山南義陣(산남의진)의 보급물자가 대량으로 靑松(청송) 眞寶(진보) 등지에서 수출되었다 丁未年(정미년) 가을에 立巖(입암)에 패전을 당하고 또 그해 겨울에 盈德(영덕)서 패전을 당하여 鄭大將(정대장) 父子(부자) 殉節(순절)하고 崔公世翰(최공세한)이 本部大將(본부대장)으로 就任(취임)하여 유격전으로 싸우기를 계획하고 本部(본부)를 南東大山(남동대산)에 근거하고 각 분대를 각 지방으로 분담시킬 때 公(공)은 靑松東部陣(청송동부진)에 都總將(도총장)으로부터 參謀長(참모장)까지 歷任(역임)하여 戊申年(무신년) 봄부터 시작한 활동이 風雨(풍우)를 피하지 않고 木石(목석)을 의지하여 왜적을 격살한 것이 많은 數字(숫자)에 達(달)하더니 辛亥年(신해년) 가을에 이르러 高臥室(고와실)에서 참패를 당하여 顚末(전말)을 보고 九死一生(구사일생)의 걸음으로 大邱(대구)에 들어가서 美國(미국) 宣敎師(선교사) 안이화(安以華)의 도움을 얻어 姓名(성명)을 보존하고 고민되는 세월을 겪어오다가 光復靑天(광복청천)을 보고 逝去(서거)하다  <山南義陣遺史424~4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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