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45)뭔가 달아날 수 없게 옆구리를 꾹 찌르는 물체가 있었다. 깡마른 여자는 막연하게 칼일 것이라 추정했다. “난 이 바닥에서 갈고리로 통하지. 어차피 막장 인생으로 살아가는데 설마 함께 막장열차에 오를 생각은 없겠지, 고분고분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조금이라도 서툰 짓하면 서로 막장이 되는 거지. 따라올 수 있겠지?”목소리만 듣고도 오그라드는 갈라지는 음성에, 되바라진 어깨에, 옆구리를 겨냥한 뾰족한 물체가 더 이상의 반항이 안 된다고 명령하고 있었다. 인파들 속에서도 꼭두각시처럼 순순히 동행했다. 달아났던 모텔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갈고리는 한 번 더 다짐을 했다. “나는 이 일대를 책임지는 해결사야. 너처럼 튄다고 해도 손바닥 안처럼 훤한 나와바리 안에서 뛰어봐야 벼룩이지.”그러면서 옆구리에 찌르고 있던 물체를 보여주었다. 깡마른 여자가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친숙한 삼각자였다. “삼각자라고 웃기게 보지 마. 내손엔 신문지를 말아 쥐어도 막대기가 되듯, 삼각자는 치명상을 입히게 충분해. 웬만한 벽도 뚫을 수 있는 파괴력까지 갖출 수 있는 것은, 내손을 거쳤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들어갈까?” 출입문 앞에 모텔주인이 팔짱을 끼고 버티고 있었다. 한발 모텔로 들어가는 순간, 불이 번쩍하게 뺨 한 대를 맞았다. 팔짱을 풀고 뺨을 때리는 동작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그에 적절한 대처방법이 없다는 데서 더 놀라고 있었다.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패잔병 그대로였다. 등 뒤에는 갈고리가 달아나지 못하게 버티고 있었다. 사실 따지자면 일 안하겠다며 떠난 것 밖에 달리 잘못이 없었다. 선금을 떼먹은 것도, 방을 난장판으로 만든 것도 아닌데, 이미 모텔주인은 당당했다. 반대편 뺨도 여지없이 갈긴 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 거렸다. “인간적으로 대접하면 인간적으로 받아야지. 왜 이렇게 폭력을 쓰게 만들어!”갈고리가 헛기침을 했다. “갈고리, 애 데리고 들어가서 버릇 좀 고쳐줘. 서울살이 매운 맛을 봐야 빳빳한 꼬리가 절로 내려가지.”두 뺨이 얼얼한 채로 갈고리가 끄는 빈방에 들어갔다. 깡마른 여자는 무엇인가 옳지 않다며 저항하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한 톨도 남지 않았다고 직감하고 있었다. 덫에 걸린 고라니처럼 발버둥 칠수록 점점 죄여드는 통증을 감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온몸에 구렁이 문신으로 꽉 채워진 갈고리의 알몸을 묵묵히 받아냈다. 그 와중에도 자호천을 떠올렸고 우로지를 떠올렸다. 기필코 돌아갈 것이다. 돌아가서 울창한 숲길의 끝을 다시 걸을 것이다. 숲길의 끝에 다다라 왔던 길을 향해 돌아서 걷다보면, 목조가옥이 삐딱하게 세월과 맞서는 그곳이 자신이 떠나온 것이라 절감했다. 아흔 아홉 칸 대저택과는 거리가 멀지만, 백년 넘게 뿌리를 박고 버틴 목조가옥의 지조를 외면한 죄 값은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몇 번의 만족으로 코까지 골며 자고 있는 갈고리가 깨지 않게 최대한 소리 죽여 옷을 찾아 입었다. 갈고리 주머니를 뒤져 삼각자를 손바닥에 놓고 온힘으로 다시 움켜잡았다. 말대로라면 신문지도말아 쥐면 막대기가 될 수 있듯, 삼각자도 간절함이 깃들면 충분한 흉기로 변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패하면 그 보복은 클 것이다. 갈고리의 목을 향해 삼각자 끝을 정확히 겨누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