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서 원림(園林)을 삼으라」하셨느니라.)』보왕삼매론 일곱 번째 구절이다.박성도본관이 밀양으로 영천의 파계(巴溪)1)에 살았다. 지방과 연결하여 의병을 모집하는 소임으로 각 지역에 출몰하였으나 급기야 최세한이 실패하자 자신 또한 적에게 붙잡혀 몇 해 동안 감옥살이를 마치고 출옥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원문〉朴聖道는 密陽人이라 居永川邑巴溪하다 以地方連召募之任으로 出沒各地라가 及崔世翰之敗에 身亦被執하야 繫獄數年而出하야 未幾에 卒하다 <山南倡義誌 卷下60p>朴完植 義士 略歷(박완식 의사 약력)朴完植(박완식)은 字(자)는 聖道(성도)이오 貫鄕(관향)은 密陽(밀양)이라 密城大君(밀성대군)의 遠孫(원손)이오 李氏朝鮮(이씨조선) 端宗朝(단종조)에 死節(사절)한 청재공(淸齋公) 심문(審問)의 十六世孫(16세손)이라 永川郡(영천군) 古村面(고촌면) 巴溪洞(파계동)에 世居(세거)하였다 稟性(품성)이 豪放(호방)하고 威儀(위의) 엄숙하여서 童蒙(동몽) 때부터 비밀탐정을 잘 하기를 암행어사 될 자격이 있다 하여 御使(어사)라고 부르는 別號(별호)도 있었고 陰陽卜筮之術(음양복서지술)이 능숙하고 相書(상서)와 山書(산서) 등서에 달통하였으며 六韜三略(육도삼략) 등 兵書(병서)를 숙독하였다 치산등절에 동한하였고 공익사업을 잘하였으며 行步(행보)를 잘하여 日行三百里(일행삼백리)를 무난히 하였다 公(공)이 當世(당세)하기를 國家末運(국가말운)에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이 나라의 난리는 가위 年復年(연복년) 있었다 門中(문중) 어른 분들의 이야기가 항상 나라 일을 걱정하였으므로 그 곁에서 보고 들은 것이 모두 상식이 되었고 弱冠(약관) 시절이 될 때에는 倭賊(왜적)들이 벌써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시작하여 서울에 군사를 끌고 들어와서 우리 國母(국모)를 살해하고 國王(국왕)을 협박하였으며 東萊(동래)와 釜山(부산)을 저희들 문거리로 만들어서 物産(물산) 교환을 저희들 마음대로 하고 그뿐 아니라 다른 浦口(포구)에도 開港場(개항장)을 强要(강요)하여 倭邑(왜읍) 물건의 시장터로 만들고 심지어는 國土中心(국토중심)을 관통하는 철도까지 저희들 손아귀에 집어넣고 三千里江山(삼천리강산)을 왜적들이 편답하여 임산물 벌채와 광산 채굴과 황무지 개간과 하천부지 이용 등을 송두리째 물색하여 점령하고 있다 이때에 우리 조정에서는 勢道(세도)정치가 끝나자마자 派黨(파당)정치로 옮겨와서 親淸派(친청파)이니 親日派(친일파)이니 親露派(친로파)이니 하면서 세력다툼에 피를 흘리다가 世界大勢(세계대세)는 청일전쟁 노일전쟁에 모두 일본이 승리되고 우리는 어두운 밤 산길에 강도를 더불고 동행하는 격이 되었다 왜적들은 이 기회를 틈타서 우리나라에 죄를 짓고 달아난 역적 놈을 저희들 나라에 수용하여 鬼(창귀)로 두고 우리나라를 좀먹는 日進會(일진회) 놈들을 坊坊谷谷(방방곡곡)에 파수로 보내서 走狗(주구)로 하여 合邦(합방)을 工作(공작)하고 그 意圖(의도)로서 做出(주출)된 것이 소위 乙巳五條約(을사오조약)이라 이것으로 보호한다 명칭하고 우리나라 逆臣(역신) 놈들을 더불고 강제로 勒約(늑약)을 체결하니 우리는 國內國外(국내국외)에 행세할 권리를 전부 장탈당했다 國家全體(국가전체)가 설분할 계책을 강구할 때에 公(공)은 울분을 참지 못하여 각 지방으로 연락하여 同志(동지) 數十名(수십명)을 모집하여 더불고 山南義陣(산남의진)에 들어가서 丙午(병오) 丁未(정미) 兩年間(양년간)에 일선에서 활약하다 丁未(정미) 一年之內(일년지내)에 鄭大將(정대장) 父子(부자) 戰殉(전순)하고 陣中(진중) 要人(요인)들이 先大將(선대장)의 生時(생시) 遺命(유명)으로 興海(흥해) 崔世翰(최세한)을 맞이하여 大將(대장)으로 추대하다 崔大將(최대장)이 취임하여 작전계획을 시설할새 百戰山河(백전산하)에 경험이 많은 各部將(각부장)들을 선택하여 慶尙道內(경상도내) 여러 곳 큰산 要地(요지)마다 한 분대씩을 인솔하고 파견되어 유격전을 전개하도록 하고 崔大將(최대장)은 本部(본부)를 담당하여 본부를 南東大山(남동대산) 지역에 웅거하고 각지의 파견된 분대를 조종하여 數年(수년)간 경상도내에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였다 公(공)은 그때에 본부의 召募將(소모장)으로 되어 많은 활약을 전개하였다 本部(본부)의 담당구역은 경주 영천 장기 흥해 기계 죽장 청하 등지로 되었는데 항상 군인과 물자가 부족되므로 전투를 한 번 할려면 준비를 한 번씩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모집하고 물품을 수집하는 것은 소모에 책임이 있는 고로 公(공)은 항상 민간에 나와서 활동한 일이 많았다 그 때문에 민간에서 朴召募(박소모)를 잘 알게 되고 그의 인격을 모두 칭찬하였다 己酉年(기유년)에 崔大將(최대장)이 被擒(피금)되어 本部陣營(본부진영)이 무너지고 각처에 분대들도 모두 차례로 顚末(전말)되었다 公(공)은 數十名(수십명)의 殘軍(잔군)을 더불고 항전을 계속하다가 말경에 중과부적이 되어 유지를 못하고 公(공)도 被擒(피금)되어 十年(십년) 獄苦(옥고)를 지내고 출옥하여 地下(지하)운동으로 활약하다가 光復(광복)의 靑天(청천)을 못보고 恨(한)많은 그 세상을 떠났다.<山南義陣遺史455~4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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