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피해 어스름이 내려앉는 시간을 기다려 형님네 밭으로 갔다. 호박잎을 따기 위해서다. 저녁 시간임에도 매미와 쓰르라미가 귀청을 자극하며 울어댄다. 낮에 잠자리도 몇 마리 보였으니 이제 여름이 막바지로 가려는 건가 싶다.우리 텃받은 겨우 모종 세 개를 심은 탓에 따먹을 만한 호박 잎이 많지 않다. 형님네 밭은 워낙 넓은지라 호박이 마음 놓고 뻗어갔는지 크고 작은 이파리들이 가득하다. 예쁜 이파리만 골라서 바구니에 담았다. 그러고는 숙였던 허리를 펴는데 갑자기 눈부시게 아름다운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둥근 액자에 가득한 붉은 빛, 아래편 검은 그림자에 대조되어 잠시 석양이라는 것도 잊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형님 밭이 길가 굽이진 곳에 있는지라 반대편 차선에서 오는 차량의 모습이 보이도록 세워놓은 원형의 거울 안에 석양의 붉은 빛이 가득 비쳤던 것이 마치도 미술관에 걸린 붉은 배경의 그림 같았던 것이다. 고개를 돌려 서편을 보았다. 하늘 가득 붉은 빛과 검은 빛이 담겨 있었다. 보는 도중 경계가 점점 흐려지며 붉은 색이 검은 색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검은 색 속에서 몇 개의 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달은 보이지 않았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달라붙는 벌레들은 별로 없었다. 그동안 너무 더워서 애벌레가 살 웅덩이가 다 말라붙었다고 했다. 세상이란 참, 한 가지 나쁜 일이 있으면 또 한 가지 좋은 일도 있게 마련인가 보다.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외등을 켜놓고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다. “뒷밭에 간줄 알았는데 어디까지 간 거요?”“형님네 밭에요. 저기 저 별들 보세요!”우린 한참이나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다. 옛날 여름밤에는 종종 은하수가 흘러가곤 했는데, 이젠 단지 몇 개의 별로 만족 해야 하나 보다.“여름이 벌써 지나가려나 봐요. 우리가 여기 내려온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었네요.”작년 우리가 여기 처음 내려와서 오픈 하우스란 걸 하면서 손님들 초대했지요. 많이들 걱정하셨어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서울밖에 모르던 사람이 이곳 시골에 와서 어떻게 잘 살 수 있겠냐고 모두들 걱정하셨죠. 그런데 이제 일 년이 흘렀는데 난 원래부터 시골 출신이었던 것처럼 느껴져요. 일이 있어 서울 가면 빨리 시골로 내려오고 싶어지고, 나무와 채소와 꽃이 궁금해지고 말이죠. 할아버님 침수정 정자 옆으로 난 길로 산에 오르는 것도 좋아하고요. 앞으로 우린 여기서 더 행복하게 살게 되겠죠. 그럴 수밖에 없어요. 우린 내년 봄이 되면 더 많은 나무를 심을 거니까요. 그것도 누구나 찾아와서 나무 이름을 즐겨 찾아보게끔 많은 종류의 과일 나무를 심기로 했지요. 나무에 열리는 과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무 전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쇠줄이나 파이프는 고수의 몸에 두르지 않기로 했고요. 가능하면 나무를 보러 온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쉴 수 있게 시골 찻집도 내면 어떨까 싶고요. 그리고 찻집 위층에선 책도 볼 수 있고 모임도 가질 수 있게 공간도 있어야 하겠네요. 사람들이 찾아오면 차를 주차할 자리도 있어야겠죠? 그리고 찻집 옆에 메리고라운드를 예쁘게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가 문단에 첫발을 들여놓은 소설 제목이 ‘메리고라운드’였으니까요.나는 공상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도시에서 반짝이는 네온의 불빛을 별빛보다 먼저 안 소녀는 수많은 공상을 하면서 밤을 보냈다. 하지만 시골에서 살 것을 꿈 꾼 적은 없었다. 공상이란 절대 상상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는 꿈이다. 상상하지 않았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믿는 꿈이다. 이제 시골에 내려온 지 일 년이 다 되었다. 이 귀촌 주부의 일기도 다음 회로 53주를 맞으며 일 년을 기념할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사랑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다음 회로 마감하려 한다. 귀촌 주부 파이팅!(2018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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