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는 전남 구례군 마산면 지리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이 사찰은 544년(진흥왕 5년) 신라에 대승불교를 도입하여 진흥왕의 총애를 받았던 고승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였고, 643년에 자장율사가 증축하였으며 의상대사가 각황전을 창건하였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백제 땅이었던 이곳에 신라인들이 중건하였다는 것에 대해 지속적인 의문이 제시되다가 1978년에 신라 경덕왕 대의『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新羅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이 발견됨으로써 의문이 풀렸다. 이 사경의 발문에 의하여 연기조사는 황룡사(皇龍寺)의 승려로서 754년(경덕왕13) 8월부터 화엄경 사경을 만들기 시작하여 이듬해 2월에 완성 시켰던 실존 인물임이 밝혀졌다. 그러므로 창건연대가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 때가 아닌 경덕왕(재위 742~765) 때이고, 자장 및 의상의 중수 또한 사실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이 절은 경덕왕 재임 시 연기조사가 창건하였고 신라 말 도선(道詵)에 의하여 크게 확장되었으며 조선시대의 화엄사는 1424년(세종 6)에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으로 승격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렸고, 석경(石經)마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에 벽암 각성((碧巖 覺性)은 1630년(인조 8)에 중건을 시작하여 7년 만인 1636년에 대웅전과 몇 동의 건물을 지어 1649년 다시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으로 승격되었다. 화엄종의 중심 사찰이었던 이 절에는 창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승들이 머물면서 창사의 이념인 화엄사상의 구현이 이루어져 왔다. 창건주인 연기조사를 비롯하여 정행(正行)·낭원(朗圓)·현준(賢俊)·결언(決言)·관혜(觀惠) 등의 화엄학승(華嚴學僧)들이 머물렀다.화엄사는 백두대간의 끝자락인 지리산 종석대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이 구례군 광의면의 원사봉(556.2m)에 이르기 전 이 산줄기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사찰의 주요 건물인 각황전은 이 산줄기를 배산으로 하여 동남향으로 지어져 있으나 대웅전을 비롯한 나머지 건물들은 대부분이 배산임수(背山臨水) 형국이 아닌 남서향으로 지어졌다. 각황전이 동남향을 하고있는 것은 아마 화엄종의 주불인 아미타불이 동남향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화엄사는 초창기 터전을 잡을 때 지리산 노고단과 종석대에서 크게 두 갈래로 뻗어 내려온 산자락 가운데 깊은 산(계곡) 속에 위치하다 보니 계곡풍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계곡풍을 막고자 대웅전 뒤쪽에 대나무 숲과 일주문 앞에 비보 숲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보제루와 ㄱ자형의 광학장 역시 풍수비보 차원의 건물로 보인다. 이곳의 수세는 깊은 산(계곡)의 안쪽이다 보니 그곳에서 흘러나온 수량이 제법 많아 마산천을 이루고, 이 물들은 다행이 화엄사의 동남쪽을 에워싸고 흘러 사찰 내부의 기운을 잘 갈무리해준다. 그리고 도선국사는 대웅전 앞에 세워진 오층석탑은 화엄사의 대가람이 백두산 혈맥의 웅대한 힘과 섬진강 태극의 힘에 술렁거리는 배와 같은 형국이므로 이 탑으로 움직임을 가라앉히고 가람에 원만한 기운이 감돌도록 비보 차원에서 세워진 탑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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