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을 베풀려거든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덕 베푼 것을 헌신처럼 버리라」 하셨느니라.』보왕삼매론 여덟 번째 구절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칭찬을 받거나 보상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심리일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칭찬이나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때 섭섭하거나 괘씸한 마음이 생긴다. 그러므로 자신이 베푼 선행이나 공덕에 집착하지 않고, 누구에게 베풀었는지도 기억하지 않으며, 어떤 형태로든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순수한 보시 행위인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공덕이야말로 진정 나를 위한 일임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윤용식본관은 파평이며 청송에 살다가 서종락이 창의(倡義)하였을 때 소모장이 되었다. 지역 내 뜻있는 사람들을 다수 이끌고 의병진으로 들어갔다, 고와실 전투가 패배하자 몸을 숨겼다.〈원문〉尹龍植은 坡平人이라 居靑松하야 徐鍾洛起倡時에 爲召募將하야 道鄕內有志者多數入陣하고 至高臥室之敗하야 遂隱身하다 <山南倡義誌 卷下60p>尹龍植 義士 略歷(윤용식 의사 약력)尹龍植(윤용식)은 貫鄕(관향)은 坡平(파평)이오 靑松(청송) 出身(출신)이라 本陣(본진)에 從事(종사)로 활약하다가 후에 靑松東部陣(청송동부진)에 召募將(소모장)으로 활약하였고 후에 은신하다 <山南義陣遺史475p>남시철자는 이길 본관은 영양이며 운강 계조의 후손이다. 일가인 석우 등과 더불어 같은 날 같은 시에 의병진에 들어왔으나 영덕전투가 패하자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서종락을 따라 다시 청송에서 거사(擧事)하였다. 그러나 일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아 드디어 발자취를 충청도로 감추었다.〈원문〉南時喆은 字二吉이요 英陽人이라 雲崗繼祖之后라 與族人南錫佑等으로 同時入陣이라가 至盈德之敗하야 歸鄕從徐鍾洛而復擧於靑松이라가 事竟不遂하고 遂遯跡於湖中하다 <山南倡義誌 卷下60p>남시철 義士 略歷(남시철 의사 약력)南時喆(남시철)은 字(자)는 二吉(이길)이오 貫鄕(관향)은 英陽(영양)이라 本陣(본진)에 활약하였고 또 靑松東部陣(청송동부진)에도 활약하다가 후에 은신하다 <山南義陣遺史476p>박문선본관은 밀양으로 청송 현동면 사람이다. 1907년 정미 9월에 김일언과 더불어 같이 청송 서종락의 의병진으로 들어왔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후의 전말(顚末)은 살필 수가 없다. 누군가는 적에게 붙잡혀 감옥에 갇혔다고도 하지만 상세하지 않다.〈원문〉朴文善은 密陽人이요 靑松縣東居人이라 丁未九月에 與金一彦으로 同往靑松하야 得徐鍾洛之準備而還하고 其後顚末不考而或言被執於獄이러니 未詳이라 <山南倡義誌 卷下60p>朴文善 義士 略歷(박문선 의사 약력)朴文善(박문선)은 貫鄕(관향)은 密陽(밀양)이오 靑松(청송) 出身(출신)이라 처음에 淸道(청도) 昌寧(창녕) 지방을 책임지고 소모하였고 入陣(입진)하여 활약하다가 피집되어 대구에 체수되고 전말은 미상이라 <山南義陣遺史476p>허서기이름은 전하지 않고 누군가가 본관은 김해라 하고 울산에 산다고 하였다. 문학과 훌륭한 행실이 있고 말을 잘하는 재주가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허서기가 경고하는 것을 들으면 비록 자신이 어리석고 무식하고 몰상식한 사람이라 해도 저절로 열광적인 애국의 마음이 생겨났다고 한다. 허서기의 웅변은 뭇사람들의 찬조를 얻어냈다고 전한다. 일이 실패한 뒤 기계(杞溪) 곡리(谷里)의 한 악한의 집에서 잠을 자다가 그 종적이 묘연하였다. 동지들이 남몰래 그의 행방을 찾아보니 그와 원수진 사람이 허서기가 의병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적의 보조관이 되어 그를 해쳤다고 하는데 허서기가 죽은 곳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원문〉許書記는 名不傳이요 或曰金海人이요 居蔚山이라 有文行善射之才하야 當時之人이 見此人之警告則雖愚昧沒識人이라도 自有熱狂的愛國之心하야 甚得贊助矣러라 事敗後에 投宿於杞溪谷里一惡人之家하다가 蹤跡이 杳然이라 同志暗中搜査하니 讎人이 覺之하고 投入於敵하야 爲敵之保助官하야 以害同志하니 許書記之死所을 無人可考者러라 <山南倡義誌 卷下60p>許書記 義士 略歷(허서기 의사 약력)許書記(허서기)는 名不傳(명부전)이요 或曰(혹왈) 貫鄕(관향)은 金海(김해)요 蔚山(울산) 出身(출신)이라 하더라 문학과 언론에 능숙하므로 지방 유세를 하더니 杞溪(기계) 谷里(곡리)에서 惡人의 집에 숙박하다가 행방이 불명되고 義兵들은 그를 조사하니 惡人(악인)은 왜 헌병 보조원으로 되다 <山南義陣遺史47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