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김씨(義城金氏)김기상() 고려 태자의 첨사(詹事)인 용비(龍庇)의 후손이며 호는 다암(多菴)이다. 임진왜란에 형제가 청하(淸河)로부터 어머니인 곽씨(郭氏)를 업고 파난하여 신녕(新寧)의 다내촌(多內村)에 살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어머니를 모셨다. 적을 만나면 반드시〔어머니를 살려달라고〕애걸하였으며, 또한 의병을 모아 아우인 애상(愛相)을 보내 의병진(義兵陣)으로 가게 하였고, 어머니가 돌아가심에 여묘 살이를 하였다. 순조조에 효도가 조정에 알려져 시복시정(司僕寺正)으로 추증되고, 경효사(景孝祠)에서 제향 한다. 실기가 있다.(원문)金相 高麗太子詹事龍庇后 號多菴 壬亂兄弟 自淸河負母夫人郭氏 避居新寧多內村 血誠奉養 遇敵必哀乞 又募兵 送弟愛相赴義陣 母歿 廬墓 純祖朝 以孝聞 贈司僕寺正 享景孝祠 有實紀김애상(金愛相) 다암(多菴) 기상(猉相)의 아우이며 호는 죽파(竹坡)다. 용기와 힘이 빼어났다. 임진왜란에 의병진(義兵陣)에 종사하여 전투의 공적(전공戰功)이 많다. 어머니 모심에 효도하고 이미 돌아가시자 여묘살이를 하였다. 벼슬은 훈도(訓導)이며 순조조에 이조참의(吏曹參議)로 추증되었고, 경효사(景孝祠)에서 제향 한다. 실기가 있다.(원문)金愛相 多菴相弟 號竹坡 勇力絶人 壬亂從事義陣 多戰功 事母孝 旣歿廬墓 官訓導 純祖朝 贈吏曹參議 享景孝祠 有實紀김경생(金慶生) 다암(多菴) 기상(相)의 아들이며, 담력과 지략이 있었다. 병자호란에 한양으로 갔지만 적의 세력이 창궐(猖獗)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정축년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추증 되었다.(원문)金慶生 多菴相子 有膽略 丙亂赴京 賊勢猖獗 不得入南漢 乃自決立死丁丑 贈嘉善김중기(金重器) 죽파(竹坡) 애상(愛相)의 현손이며 벼슬은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다. 귀와(龜窩) 김홍(金□)의 문하에 종유하였는데, 귀와가 준 시에 이르기를 “문에 다다라 세덕(世德)을 강(講)하더니, 공연히 익양(益陽)1203)이 탄식을 발하였지. 젊은 나이에 배움에 뜻 두더니, 빛나는 선조들로 도리어 물결에 넘어졌네”라 하였다.(원문)金重器 竹坡愛相玄孫 官敦寧都正 遊金龜窩□門 龜窩贈詩曰 踵門講世德 空發益陽歎 妙歲志於學 光先回倒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