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46)남산 공원길 입구에 위치한 계단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단풍이 장악하는 발화점처럼, 붉고 윤기 나는 잎사귀들이 처렁처렁 남산 언저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계절을 영접하는 놀라운 순종의 자세처럼 보였다. 한 계절이 가고 또 다른 계절이 어김없이 찾아와 자신의 능력을 펼쳐 보인다면 세상은 순항할 것이다. 의무를 다한 계절이 존재한다면 삼라만상은 번창할 것이다. 깡마른 여자는 문득, 감상에 젖은 마음을 잠시 접어두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유야 어쨌든 두 사람을 살해한 뒤끝이라 마음 한 구석이 뒤죽박죽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갈고리와 모텔주인을 반드시 죽여야만 했는가. 스스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노예가 되었거나 마침내 병든 나귀처럼 버려졌을 것이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케이블카 승강장에 다다랐다. 왕복과 편도의 갈림길에서 망설였지만 대부분 편도를 선호하고 있었다. 그만큼 효율적인 선택이라 사람들은 그쪽으로 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깡마른 여자도 편도를 끊었다. 아래에서 보이던 소나무군락을 지나서인지, 바람방향과 맞닿았는지 솔잎향이 시시각각으로 느껴졌다. 자호천과 우로지에서 가슴까지 들어차던 솔잎 향과는 달랐다. 한 번 더 걸러낸 옅어짐은 있지만 목젖까지 감동시키는 울림은 없었다. 외부난간으로 시작하여 질리도록 빼곡한 자물쇠가 이리저리 걸려있었다. 자물쇠종류도 다양했지만 물량에 은근히 주눅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사랑을 맹세했을까. 이별의 표식으로 자물쇠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정과 사랑이 내내 존재하기를 기원하는 하나의 의식으로 사용되었기에 간절함은 우렁찼다. 가장 높은 곳에, 가장 화려한 곳에 매달았다면 그것만으로 입증이 된 셈이었다. 깡마른 여자도 중간 가격의 자물쇠를 샀다. 너무 값싸거나 너무 비싸거나 하면 왠지 뒤처지거나 앞서거나 하는 부담감이 작용한다는 전제하에, 중간 가격의 자물쇠를 들고 난간 구석을 찾았다. 난간구석도 빈틈없이 빼곡했다. 그나마 적당한 자리를 물색하고 주저앉아 고민을 했다. 우정도 사랑도 해당사항이 없는 자신을 돌아보며 어떤 염원이라도 실어 보내야 한다는 무게감으로 휘청거렸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한 갈고리와 모텔주인의, 가난한 영혼을 위한 의식이라고 명명하고 자세를 다소곳하게 잡았다. 쥐나 토끼나 들개 따위는 죽여본 적이 있어도 살인은 처음이었다. 생사여부는 뉴스에서 알게 되었으니 더 이상 궁금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죽은 두 사람의 악행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자물쇠를 걸고, 그곳에서 두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다. 설사 CCTV안에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어도 뒷모습이거나, 쉽게 알아 볼 수 없는 뿌연 모습으로 대신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두 번째다. 지금 주변에 있는 밝은 사람들의 표정이 오래 지속되기를 그래서 자자손손 번창하는 평화로 우거지기를, 이것이 세 번째다. 철컥, 자물쇠를 채웠다. 한공간과 한공간이 분리된 느낌이 들었다. 단지 난간에 가까스로 걸다시피 한 자물쇠를 채웠을 뿐인데 영역이나 공간이나 세계가 따로 분리되는 엄숙한 영험함이 전해져왔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사실 세 번째 소망은, 마음속에서 반대로 빌었다면 악마적인 요소가 이미 자리 잡은 자신을 떠받들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깡마른 여자는 서울을 청산했다. 자물쇠하나로 모든 것을 깨우쳤다 생각하고 남산 길을 터벅터벅 걸어내려 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