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분노라는 그 마음 작용이 그 사람을 제멋대로 움직이게 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울화가 치밀어도 능히 참으면 달리는 마차를 제어하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고요한 마음을 닦아 분노가 일어나지 않도록 수행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잘잘못을 가리는 문제, 이것은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우리네 세간에서도 흔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비와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서로가 잘못된 것을 갖고 말을 할 때는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여기서 부처님의 말씀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날 사리불이 부처님께 만약 남의 죄를 들추고자 하면 어떤 법에 의지해야 하느냐고 여쭌적이 있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남의 죄를 들추고자 하는 사람은 다섯 가지를 알아야 하느니라. 그 죄가 거짓이 아니고 사실이어야 하며, 그 때가 적절해야 하고, 법도를 어기지 않고 보탬이 되는 것이어야 하며, 거칠거나 험하지 않고 부드러워야 하며, 미움에 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죄를 들추어야 한다.”하셨습니다.이러한 가르침을 생각하지 않고 남의 죄를 들추어내면 다툼만 있을 뿐 좋은 결과를 얻기가 어렵습니다,일을 지혜롭게 풀어갈 줄 아는 사람은 다투지 않습니다.불자들이 명심하셔야 할 일은 다투지 않으려면 성내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늘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과 다툴 일이 생겼을 때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들이 다투는 일은 남의 결점이나 잘못을 들추어 시비를 가리는 경우에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다음은 부처님의 말씀이니 잘 들어두셨다가 남의 잘못을 들추는 일로 다툼이 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 어느 날 사리불이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만일 모든 수행자들이 서로 다투면서 ‘죄를 지은 수행자와 죄를 들춘 수행자가 있다’고 말할 때, 그들 모두가 올바른 판단에 의해 스스로 살피지 않으면 싸움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끝내는 서로 미움이 깊어져 원수처럼 되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이미 지은 죄에 대하여 그치게 하고 쉬게 할 수 없을 것이다.죄 지은 사람은 내 스스로가 옳지 않은 일을 했기 때문에 남들이 그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불쾌하여 꾸짓고 일부러 드러낸 것임을 알아야 하고, 남의 죄를 들춘 사람은 스스로 그것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서로 싸우지도 않게 되고, 일어난 싸움도 법률로서 쉬게 하고 그치게 할수 있을 것이다.”부처님께서 사위성에 계실 때, 어느 날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남의 죄를 들추기 때문에 일어나는 싸움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이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네 가지 방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당사자 앞에서 보이는 것과, 기억을 떠올리게 하여 다스리는 것과, 어리석지 않았다고 인정하는 것과, 근원을 따져 다스리는 것이니라.”훌륭한 목숨꽃바람이 불면 사람들의 마음이 어수선해집니다. 흔히 센치해진다고 말하는데, 이런 계절이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누구나 영화배우가 됩니다. 감성이 풍부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감성이 풍부해지면 갑자기 예전에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 그립기도 하고, 언젠가 그 예전에 마음을 잠시 흔들어 놓았던 이성도 생각나고, 화사하게 화장하고 결혼하던 그 날도 생각나게 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