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적은 이익으로서 부자가 되라」 하셨느니라.』 조상님들의 묘소 벌초와 성묘의 계절이다. 시대적 흐름으로 묘소를 없애가는 추세이나 아직은 주말이면 문중마다 모여 벌초하는 풍경이 많이 남아있다. 조상님들이 문중자산을 많이 남겨준 집안은 많이 모인다 한다. 묘소를 다듬는 일도 중요하나 그 어른들의 삶의 지혜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가난했지만 화목했던 조상님들의 삶을 반추해보는 것이 참 중요하다 싶다. 우리나라는 2025년 GDP 순위가 세계 9위를 전망한다고 한다. 세계에서도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부자인 것이다. 그런데 상대적 빈곤감은 훨씬 커지고 있다. 아무리 넉넉해도 만족할 줄 모르면 가난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물질만능주의로 치달아온 결과다. 「三日修心千載寶(삼일수심천재보) 百年貪物一朝塵(백년탐물일조진)」[삼일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모은 재산은 하루아침 티끌]이라는 자경문의 말씀을 새겨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나침반을 삼을 일이다.남정철자는 극삼이고 본관은 영양으로 성재 세주의 후손이다. 산남의진의 거사를 처음 일으킬 때 종사(從事)의 임무를 맡았다. 적의 형세를 수색하고 그 정보 등을 본진에 알려주었다. 그러다 영덕의 패전 이후부터 정철은 청송진을 좇았지만 일이 또한 이롭지 않아 드디어 망명하였다.〈원문〉南定喆은 字極三이요 英陽人이라 誠齋世柱后라 起事之初에 以從事之任으로 搜探敵勢하야 以報本陣이런니 自盈德敗後로 從靑松陣하야 事又不利하고 遂亡命하다 <山南倡義誌 卷下61p>南定喆 義士 略歷(남정철 의사 약력)南定喆(남정철)은 字(자)는 極三이요 貫鄕(관향)은 英陽(영양)이라 從事(종사)로서 활약하다가 후에 靑松東部陣(청송동부진)에 활약하더니 은신하다  <山南義陣遺史476p>  남정철(南井喆)의사 공훈전자사료관 공훈록1888년 2월 5일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현동면(縣東面) 개일리(開日里)에서 아버지 남희혁(南熙爀)과 어머니 월성 김씨(月城金氏) 사이에서 4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양부모는 남희재(南熙在)와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극삼(極三)이며, 호는 청강(靑江)이다. 이명으로 남정철(南定喆)을 쓰기도 하였다. 1906년 3월 산남의병부대(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종사(從仕)로 활동하였다. 산남의병부대는 을사늑약 이후 동엄(東嚴) 정환직(鄭煥直)의 명을 받은 아들 단오(丹吾) 정용기(鄭鏞基)가 경북 영천(永川)에서 주변 각 군의 의병을 규합하여 창의한 의병부대이다. 고향인 청송 지역의 서종락(徐鍾洛)·남석우(南錫佑)·남석인(南錫仁)·남석현(南錫睍)·김태언(金泰彦)·조태초(趙太超)·오상영(吳相泳)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1907년 10월 7일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대장 정용기를 비롯한 이한구(李漢久)·손영각(孫永珏)·권규섭(權奎燮) 등이 전사하였다. 그 뒤 대장으로 취임한 정환직의 휘하에서 입암·동대산(東臺山)·화장(花壯) 등지를 전전하며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07년 12월 영덕전투(盈德戰鬪) 이후 대장 정환직이 체포되어 사망하자 청송으로 귀환하였다. 청송의 의병은 주왕산을 중심으로 청송읍(靑松邑)과 부동면(府東面), 그리고 부남면(府南面) 일원의 청송 동부 지역은 서종락 부대(徐鍾洛部隊), 철령(鐵嶺) 일대의 청송 서부 지역은 남석구부대(南錫球部隊)가 활동하였다. 1908년 2월경 편성된 서종락 부대는 대장 서종락을 중심으로 중군 우영조(禹永祚), 소모장 윤용식(尹龍植), 군문집사 조경옥(趙景玉), 참모장 심일지(沈日之), 도총 오상영(吳相泳), 도포장 심지국(沈智國) 등으로 편성되었는데 여기에서 종사(從仕)를 맡았다. 1908년 10월 이후 서종락·김사곡(金舍谷)·윤상촌(尹裳村) 등의 핵심 인물들이 붙잡히거나 귀순함으로써 청송 지역의 의병 부대는 점차 해체되어 갔다. 1910년 고와실전투(高臥室戰鬪)를 끝으로 청송의병부대가 해산된 뒤 만주(滿洲)로 망명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권대웅>조경옥청송 사람인데 1906년 병오에 군문집사가 되어 각 지역의 기밀(機密)을 본진으로 알려주었다. 뒤에 청송진에서도 활동하였다.〈원문〉趙景玉은 靑松居人이라 丙午之年에 爲軍門執事하야 通各地機密하고 後靑松陣에 亦有活動矣러라 <山南倡義誌 卷下61p>趙景玉 義士 略歷(조경옥 의사 약력)趙景玉(조경옥)은 貫鄕(관향)은 咸安(함안)이오 靑松(청송) 出身(출신)이라 처음에 義興(의흥) 軍威(군위) 지방을 책임지고 소모하였고 丙午(병오) 丁未(정미) 兩年(양년)에 軍門執事(군문집사)로 활약하였고 그 후에 청송동부진에 활약하다가 의병진이 전말되고 광복운동에 협조하다가 逝去(서거)하다  <山南義陣遺史4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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