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하고도 5시가 되었다.오늘 하루, 서울이며 호남이며 모두 눈이 펄펄 내리고 있다는 소식이 카톡에 올라왔다. 심지어 딸이 사는 미국 뉴욕 지방도 눈이 많이 내려 가득 쌓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 영천 지역은 흐려 있을 뿐 눈이 없다.커피 한잔을 만들어 가지고 흔들의자에 않았다.고요한 시골 겨울의 오후 5시를 상상해 보시라.연극 무대의 암전처럼 조금씩 어두워지는 가운데 서쪽 하늘은 종일 흐렸던 하늘임에도 연분홍 빛깔이 번져 있다. 눈 밝은 사람만이 볼 정도의 미약한 분홍빛. 그러다가 진회색 어두움이 조금씩 자리를 대신한다. 하루가 가는 것이 안타깝고 밤이 오는 것이 불안해지기도 하는 그 시간이다. 오늘이라는 아름다운 선물을 영영 빼앗기는 아쉬움과 밤을 맞이하는 설렘이 교차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 흐린 가운데 태양이 잠시 구름을 헤치고 나타났었다. 눈 대신 빗방울이 몇 분동안 떨어지기도 했다. 마지막 한 이파리까지 옷을 벗은 나무들의 쓸쓸한 자태가 이 저녁에 어울린다. 나무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시간이기도 하다.가장 많은 감을 매달았던 옆집의 감나무가 특히 아름답다. 너무 키가 커서 삐죽하지도 않고 한쪽으로 쏠리거나 옆의 나무에 밀리지도 않고 늠름하게 자신의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하늘의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성채를 지키고 있다.이런 나무들은 바라보기만 해도 뿌듯해진다. 그의 한 해동안의 성취가 흡사 내가 한 일인 양 기뻐지기도 한다.사람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잘 생긴 얼굴 준수한 체격에 빼어난 능력, 덧붙여 홀륭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 말이다. 단순한 외모지상주의는 곤란하지만 그런 사람은 많아지면 좋겠다. 다만 그들이 행운을 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거나 동정하지 않고 당당한 인간으로 존중해 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행운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까지 한다면 더욱 좋겠다.오후에 형님이 잠깐 들렀다. 무궁화 심은 것을 금방 알아본다. 형님을 만난 김에 무궁화 하우스 마당에 많이 난 풀이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민들레일까? 민들레가 아니고 냉이라고 얘기해 준다. 냉이도 민들레도 아닌 옆자리의 비숫한 풀과 혼동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풀의 이름은?“그냥 겨울풀이야”형님이 말했다. 분명 그 풀도 이름이 있겠지만 형님은 모르나 보다. 잎사귀를 잘 보면 구별할 수 있다고 해서 뾰족뾰족 갈라진 냉이 잎하나를 따 가지고 식탁 위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시래기 만들려고 무궁화 하우스 앞에 널어둔 배춧잎을 보며 형님이 말했다.“햇빛 아래에서 말리면 나중엔 낙엽처럼 바스러져서 아무 소용이 없어.”그러니 뒤란 그늘에 줄을 달아 말려야 나중에 시래기로 잘 먹을 수 있단다. 아주버님 친구가 낚시를 해서 붕어를 잡아왔는데 붕어 매운탕에는 배추 시래기가 딱 어울린다고 한다.“아니 무시래기가 더 맛있다던데요.”이전 절임배추를 가지러 왔던 친구들이 배추시래기는 맛이 없다며 안 가져가던 생각을 하고 물었다.“아니야. 붕어 요리에는 배추시래기가 훨씬 부드럽고 맛있어”형님은 무가 바람 들면 안 된다고 비닐봉지에 넣어 끈으로 꽁꽁 묶어준다. 신기하다. 무가 바람 드는 것은 이렇게 공기를 차단하면 막을 수 있다고? 그럼 바람=공기? 너무도 당연한 일을 몰랐던 것이 신기하다.오늘 새에게 좁쌀을, 고양이에겐 우유를 줬다. 어두워지면그 놈들도 잠을 자겠지. 잘 생긴 감나무와 그밖의 나무들도 잠을 잘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행운을 얻은 사람들과 행운을 아직 얻지 못한, 언젠가는 얻게 될 많은 사람들도 자겠지. 굿나잇, 모두들! (2017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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