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하고자 하는 마음, 慾望(욕망)으로 살아간다. 욕망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죽음의 순간까지 삶에 대한 집착,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이 하고자 하는 마음의 출발은 두 갈래다. 하나는 業(업)으로부터, 또 하나는 願(원)으로부터 시작된다. 보통사람의 경우 원보다 업의 힘이 강하다. 작심하여 원을 일으켰으나 삼일 밖에 못가는 것은 업의 힘이 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현은 업으로부터 오는 욕망을 극복하고 서원을 세워 인류에 그 족적을 남겨왔다. 불교에서의 보살은 上求菩提(상구보리) 下化衆生(하화중생)의 원력을 바탕으로 존재한다. 불자로서 성현의 반열에는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수행자로서 잘못 익힌 업의 욕망에 끌려가지 않고 온전한 나이기를 바라는 원력을 일으켜 향기 나는 삶을 살고 싶다.배 의사는 산남의진역사에서는 상언으로, 산남의진유사에서는 연집으로 각각 그 이름을 쓰고 있으나 동일인이다. 「府君 諱淵楫 字元序 官通政大夫義禁府都事 山南義陣從征時 諱尙彦…<家狀>」배상언자는 원서이고 본관은 흥해이다. 산남의진의 실패로 고향으로 돌아가서 청송의병진의 주요한 인물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의병을 모집하고 한편으로는 적과 싸우다 모든 일이 자신의 뜻과 같지 않아 몸을 숨겼다.〈원문〉裵尙彦은 字元書요 興海人이라 自山南陣으로 歸鄕里하야 爲靑松之要人而且募且戰이라가 皆事不如意而隱身하다<山南倡義誌 卷下61p>裵淵楫 義士 略歷(배연집 의사 약력)裵淵楫(배연집)은 字(자)는 원서(元序)요 관직은 가자로 通政大夫義禁府都事(통정대부의금부도사)이며 관향은 興海(흥해)이고 시조는 高麗檢校將軍(고려검교장군) 諱(휘) 景分(경분)이라 이하의 歷代世德(역대세덕)은 본집 家狀(가장)이 첨부되므로 생략한다. 公(공)의 사적을 본집가장에 의거하여 기록하면 그의 부친은 諱(휘) 선화(善華)요 모친은 南原梁氏(남원양씨) 諱(휘) 학규(學奎)의 따님이라 高宗戊寅(고종무인) 五月(오월) 初九日(초구일)에 公(공)을 靑松府(청송부) 府南面(부남면) 渴馬洞(갈마동)에서 출생하다 성품이 관후하고 기운이 특수하였다. 나이 十六歲(십육세) 때 이웃집 池別監宅(지별감댁)의 황소가 분주하게 달리는 것을 붙들어 주다가 황소와 격투되어 촛대뼈를 꺾이고도 기어코 붙들었다 그 때문에 한족 다리는 약간 절었다. 그리고 젊을 때부터 전렵을 좋아하여 태산에 짐승을 만나면 총을 쏘자 않고 달려가 발로 차서 잡으며 또 총쏘기를 잘하여 평원광야에 날짐승을 보면 백발백중하였기로 명사수란 칭찬도 받았으며 비호장군이란 별호까지 있었다. 公(공)의 나이 二十八(이십팔)세는 곧 光武九年(광무구년) 乙巳年(을사년)이라 왜적들이 우리나라 역적들을 더불고 강제로 五(오)조약을 체결하여 국권을 탈취하니 국내 상하에 울분이 극도로 격동되어 모두 설분할 모책을 강구하였다. 이때에 秘書丞(비서승) 東广先生(동엄선생) 鄭煥直(정환직)이 光武皇帝(광무황제)의 밀조를 받들고 그의 아들 丹吾公(단오공) 鄭鏞基(정용기)를 영남에 보내서 의병을 일으켜서 왜적을 물리칠 격서를 각 지방에 전하니 각지로부터 의사 수천명이 모집되어서 鄭鏞基(정용기)를 大將(대장)으로 추대하고 진호를 山南義陣(산남의진)이라 하다. 그 부하에 要人(요인) 南錫佑(남석우) 南錫仁(남석인) 李世紀(이세기) 등은 본래 청송 출신이라 청송에 와서 인원을 모집하고 물자를 수집하는데 항차 청송은 산협지대로써 포수가 많은 고을이라 산남진 군령이 어느 사람을 막론하고 총을 쏠 줄 아는 포수면 강제징발을 받도록 외었다. 이 때문에 청송고을에 저명한 의사 南昇夏(남승하) 南錫述(남석술) 徐鍾洛(서종락) 禹永祚(우영조) 沈日之(심일지) 吳相泳(오상영) 尹武建(윤무건) 南錫球(남석구) 등 여러 분이 남 먼저 응종되어 청송은 물자원료가 많고 지대가 적당하기에 군수품을 제조하여 보급하기로 약속이 되었다. 公(공)은 원래 기운이 땟처 남과 다르고 임기응급하는 용맹이 있기로 물품 운반하는 책임을 맡았다 병오년 어느 날에 차란 한 바리를 말게 싣기고 청송서 영천으로 가더니 중도에 소낙비를 피하던 반나절에 큰물이 월포되어 도로차단이 되었는지라 그러나 군령은 기한이 있는 관계로 차란 한 바리를 자기가 짊어지고 말을 몰고 물을 건너니 물 깊이가 가슴에 올라오더라. 이와같은 물을 五六(오육) 개소 건너서 진중에 도착하였다. 보는 사람이 모두 탄복하고 이 뒤로부터 배장군이란 칭호가 원근에 떨쳤다. 정미년 가을 입암접전에서 大將(대장) 鄭鏞基(정용기)와 그 부하 모든 將領(장령)이 순절하고 진세는 만분 위급할 그 때에 진중에서 先將(선장)의 부친인 東广先生(동엄선생) 鄭煥直(정환직)을 大將(대장)으로 추대하니 선생은 그때에 칠순고령이었으나 기운이 강장하였다. 그렇지만 장막을 호위않을 수 없어 公(공)은 金聖極(김성극) 李圭桓(이규환) 金泰煥(김태환) 李相浩(이상호) 등 모든 장사들을 더불고 선생을 보호할 새 혹 어떤 곳은 지대가 험악하여 말을 타지 못하면 선생을 업고 나아간 일도 있었다.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배군의 기운이 몇사람보다 우수하다 하시더라 그해 겨울에 또 영덕서 운수가 불리하여 선생이 피집되어 영천에서 순절하다. 이때에 모든 장령들이 각지를 분담하여 유격전으로서 적을 대항키로 준비할 새 崔公世翰(최공세한)을 本部大將(본부대장)으로 추대하여 남동대산지역에 웅거하고 李公世紀(이공세기)는 보현산지역에 웅거하고 禹公在龍(우공재룡)은 팔공산지역에 웅거하고 鄭公純基(정공순기)와 具公漢書(구공한서)는 북동대산지역에 웅거하고 南公錫球(남공석구)와 徐公鍾洛(서공종락)은 청송진보지역을 확보키로 하여 동서구역을 갈라서 부담하기로 되었다. 동쪽지역에는 徐公鍾洛(서공종락)을 大將(대장)으로 추대하고 여러사람이 각기 기능에 따라서 한 가지씩 책임을 담당할 때 公(공)은 先鋒將(선봉장)에 임명되어 三四(삼사)년간 용감한 전투를 계속하여 오는데 지방주민 男女老少(남녀노소)의 협력을 얻어서 꾸준히 적을 공격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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