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지 1년도 안된 아이가 주식 배당금을 받는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요. 최근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이런 0세 배당 수령자가 최근 5년간 10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미성년자 금융소득 신고자는 약 500만 명, 이들이 연간 벌어들이는 소득이 6400억 원에 달합니다. 그러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20명 중 1명이 생계 급여에 의존하는 나라. 이것이 2025년 대한민국의 민낯입니다.문제는 단순한 빈부격차가 아닙니다. 부의 흐름이 한쪽으로 쏠리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죠. 금융자산 상위 25% 가구의 자녀들이 하위 25%에 비해 첫 월급을 11%나 더 받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격차는 더 벌어집니다. 출발선이 다르면 결승점은 비교할 수조차 없는 것이죠.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저서 ‘능력주의의 폭정’에서 능력주의는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교육자본의 세습 체제라고 말합니다. 예일대 대니얼 마코비츠 교수 역시 “엘리트 부모들은 막대한 자원으로 자녀를 훈련시키고, 그 결과 시험과 학위는 능력의 증거가 아니라 세습된 특권”이라고 꼬집는데요. 더 심각한 것은 승자는 자신의 지위가 노력에 따른 것이라 믿으며 타인을 얕본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패자는 스스로를 탓하며 수치심에 빠집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라”는 조언은 결국 실패한 이들에게 “네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낙인을 찍습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자산이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열심히 ‘노오력’을 해도 근로소득만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는 사회. 이런 구조에서 ‘부모 찬스’ 없는 이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당사자가 아니면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성실하게 일하면서 나름 많은 세금을 내는데도 계층 상승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구조적 불만이 극단적 정치 성향을 키우는 토양이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요. 앞서 두 석학 모두 교육이 문제의 진원지라고 보고 있습니다. 교육이 사회 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계급을 고착시키는 벽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샌델은 “민주주의는 우리가 모이고 섞일 수 있는 공공장소와 공적 공간을 요구한다”고 강조합니다. 부자와 보통 사람들이, 사립학교와 공립학교가 분리되어 살아가는 한 능력주의의 폭정은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경고인 셈입니다.시장경제 체제에서 결과의 불평등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회의 불평등은 다릅니다. 적어도 빈곤의 대물림 때문에 인생의 출발선에 서보지도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죠. 부정한 방법으로 경쟁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적발하는 것도 국가가 할 책임입니다.역대정부들이 하나같이 출범 당시에는 ‘청년에게 공정한 도약의 기회 보장’을 국정과제로 내걸었지만 이제껏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여러 분야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단숨에 해결할 묘안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동·교육·연금의 3대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면서, 조세와 분배 원칙을 명확히 세우고, 출발점이 다른 국민들을 고려해 세금을 형평성 있게 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마코비츠 교수는 능력주의의 우월성 중심 사고를 탁월성 중심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1등만 인정하는 사회에서 각자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이 걸린 문제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처럼 흙수저도 노력하면 계층 이동을 꿈꿀 수 있는 희망이 보이는 사회는 이제 어려운 걸까요. ‘헬조선’이라는 자조적 표현이 사라지는 날은 과연 올까요. 그 답은 우리가 능력주의라는 신화에서 벗어나 진정한 공정을 향해 나아갈 의지가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생계급여’라는 구호가 아니라 ‘부모 찬스’로 대표되는 계층사다리의 비뚤어진 구조를 바꾸려는 용기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