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荒城)의 적(跡)’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발표된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 중 하나로, 흔히 ‘황성옛터’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황성의 1932년 원본 가사에는 90여 년의 차이에서 오는 우리 말의 느낌을 살펴 볼 수가 있다.이 노래는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인에 의해 창작된 본격적인 트로트 대중가요이다. 대중음악사에 축음기라는 새로운 기계식 대중매체를 이용해 히트한 최초의 히트곡으로 인정되고 있다.1928년경 동방예술단(동방극단)이 개성에서 순회공연을 하던 막간을 이용해 가수로 활동하던 신일선이 처음 노래를 불렀다. 기록에 의하면 개성에 있는 고려 시대의 궁궐터인 만월대를 둘러본 후, 융성했던 고려 수도 개성이 잡초만 무성한 폐허를 보고 망국의 슬픔과 민족의 비애를 담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황성 옛터’를 작곡한 전수린은 개성사람이었다. 바이올린 연주가인 전수린은 1928년 어느 여름 악극단의 지방 순회공연차 개성 부근 배천에 갔는데, 비로 인해 공연을 못하고 여인숙에 머물러 창밖의 장대 같은 빗발을 바라보던 전수린은 문득 얼마 전 개성에서 본 만월대의 모습이 떠올랐다. 밤에 둘러본 옛터는 풀이 무성한 채 폐허가 되어 달빛에 물들어 있었고, 벌레 소리만 쓸쓸하게 들려 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전수린은 비 내리는 여인숙에서 만월대의 밤을 회상하며 그 마음을 바이올린에 실어 즉흥적으로 연주했다. 그리고 그 멜로디를 가까이 있던 오선지에 옮겨 놓았다. 여기에 왕평(이응호)이 가사를 붙였다.이 노래가 만들어지고 불린 시기는 일제의 포악한 지배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으므로, 나라를 잃어버린 조선인의 가슴에는 애절한 가사와 선율이 식민지 백성의 심금과 정서와 융합되어 빠른 시간에 전파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그해 가을 서울 단성사 연극 공연의 막간에 처음으로 ‘황성 옛터’를 부른 이는 영화 ‘아리랑’의 주인공이었던 신일선이었다. 그리고 곧 이애리수가 부르기 시작했다. ‘황성 옛터’ 노래가 울려 퍼지면 극장 안은 순식간에 울음바다로 변했고, 흥분한 관객은 발을 구르기도 했다. 관객들은 절망적일 정도로 애조를 띤 이 노래에 망국의 슬픔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정식 음반으로 발표된 것은 1932년에 이애리수가 불러 선풍적 인기를 얻은 유행가이다. 1달 만에 5만 장이 팔렸다고 한다. 당황한 조선총독부는 1933년에 취체규칙을 만들어 출판물이나 음반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게 되었다. 이 노래가 민족 감정을 선동할 우려가 있다고 여기고 ‘정신오염’을 이유로 금지가요로 지정했다.실제로 이 노래에 대한 반응이 너무 크자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총독부는 순사를 극장에 파견했다. 극장에 이애리수가 등장하자 관중들이 환호를 보냈고 노래가 끝나자 종교집회 같은 열광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었던 조선인들의 단합에 놀란 순사들이 휘슬을 불며 이 분위기를 제지했고 급기야는 공연을 해산시켰다. 이후 이 곡은 금지곡이 되었다. 또한 사례로 한 보통학교 학생이 이 곡을 부르다가 순사에게 걸려 학생의 담임이었던 선생이 옥고를 치루는 일이 생기기까지 하게 되었다.이애리수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배우 겸 가수였던 이경설은 〈고성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황성옛터의 가사를 그대로 가져와서 불렀으나, 〈황성옛터〉를 부르는 것이 금지가 되었듯이, 〈고성의 밤〉은 발매 즉시 치안방해라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처분되고 회수당하기도 하였다.그렇지만 ‘황성 옛터’는 시대의 어둠과 수난을 뚫고 민중 사이에서 살아남아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이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는 국민가요가 되었다.1941년에는 가수 남인수가 왕평 추모 공연에서 이 곡을 ‘황성옛터’라는 제목으로 부르면서, 이후 ‘황성옛터’로 더 널리 불리게 되었습니다. 1989년 9월 26일에 〈황성옛터〉의 작사가 왕평의 고향인 경상북도 영천시 조양공원에 황성옛터 노래비가 건립되었다. 노래비 뒷면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민족의 가슴에 뜨거운 혼을 심은 우리들의 노래 황성옛터”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6-04-25 11:31:56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동정
이 사람
데스크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경북동부신문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8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64 / 등록일 : 2003-06-10
발행인: 김형산 / 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보운 / 편집국장: 최병식 / 논설주간 조충래
mail: d3388100@hanmail.net / Tel: 054-338-8100 / Fax : 054-338-8130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