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49)수명을 다한 목조건물은 조금씩 정체가 탄로 나고 있었다. 벽과 바닥이 맞물려진 단단함보다, 이미 헐거워져 가볍게 푸석푸석 내려앉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보호받는 공간으로 소임을 다하는 주거지가 아니라 패배자의 몰골로 빠르게 변신을 꾀하고 있었다. 지하실 벽에서부터 우수수 모래알갱이가 떨어져 내렸다. 그만큼 수상한 틈새가 곳곳에 자리 잡았다는 것을 공표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인간보다 훨씬 일찍 알아채는 능력이, 짐승들에게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그 수많은 날갯짓 소리가 지하실에서 자우룩이 소용돌이쳤고, 창가에 비춰진 비둘기 무리가 하늘을 타고 오를 때 말문이 막혔다. 자호천은 힘 있게 꿈틀거리며 비교적 관대하게 수십 마리 비둘기를 담아주었다. 그보다 앞서 비가 그친 하늘은 바람과 햇살과 물결로 평온을 대변하고 있었다. 비둘기들은 무더기로 날았다. 몇 대를 걸쳐 위험에서 자유로운 지하실을 둥지로 택해 살아왔다. 서로 자리확보를 하며 깃털을 세웠고, 서로 사랑을 하며 체온을 발산했다. 몇 개의 알을 낳아 품어주며 가장 최적의 장소에 불만이 없었다. 들짐승으로부터 안전했고 비와 바람으로부터 비켜가던 지하실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날짐승들은 알아챘다. 선두가 앞장서자 일제히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올랐다. 다만 낙오된 한 마리가 지하실 출구 반대쪽인 거실로 엉겁결에 모습을 드러냈다. 창문을 부딪치며 방향 잃은 날갯짓으로 휘젓고 다녔다. “창문을 열어주세요!”마치 이런 일에 대비하여 창문을 열어놓지 못한 부주의를 호되게 꾸짖는 수피아의 음성은 회초리 같았다. 나는 적극성을 보이는 그녀가 고마워 벙긋거리면서 창문을 열어 주었다. 비둘기는 인사라도 하듯 내 손바닥에 앉았다가 이내 창문 밖으로 사라졌다. 이런 광경이 생소하고 신비하여 비둘기가 앉았다 날아간 손바닥을 쉽게 접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아무래도 시내에 가서 집수리 기술자를 알아봐야겠어. 비둘기들이 다투어 떠나는 것으로 봐서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확실한 징조야.”수피아는 무슨 말을 할 듯 입을 오물거리다가 굳은 표정이 되었다. 말을 아끼는 표정이 어쩌면 건강상 이유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애잔해졌다. 별 요리솜씨가 없어도 가능한 닭백숙으로 보양식에 도전할 계획까지 마친 발걸음은 마음보다 앞지르고 있었다. 그럴 일이야 없지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집밖으로 뛰쳐나오라고, 다짐을 주었다. 반드시 그러겠다고 대답을 듣고서야 시동을 걸었다. 한 달가량 방치해둔 시동소리는 탁하고 느렸다. 시내에 접어들어 닭백숙에 들어가는 재료를 사고, 집수리 기술자를 물색하기 위해 철물점에 들렸다. 갖가지 농기구들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일렬로 도열해 있었다. 괜히 필요한 연장처럼 이것저것 눈도장을 찍었다. 멜빵바지를 입은 작달만한 주인이 인상 좋게 다가왔다.“찾는 농기구가 어떤 건가요?”“혹시 집수리 기술자도 연결해줍니까?”“그럼요. 이 방면에 전문가이면서 싼 맛에 맡길 수 있는 기술자를 당장 연결시켜드릴 테니 잠깐 앉아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등받이가 없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데모를 했고, 교통사고로 사망자가 나왔고, 여당 야당 대표가 한차례씩 나와서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TV속은 신기하게도 달라지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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