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역사박물관(관장 천진기)이 20년 동안 찾아온 영천군수 조명욱이 간행한 한방의서『이양편(二養編)』을 찾아냈다. 오는 11월 중순경 제37회 영천의 창녕 조씨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울에 한 소장자가 가지고 있던 조선 1620년 영천군에서 간행한 한의서『이양편(二養編)』을 찾아 영천으로 가지고 오게 되었다.2016년에는 영천군수 이구(李昫)가 조선 1654년 영천에서 간행한 최초의 한글 대역본 한방 음식서·한방서인『수민방(壽民方)』을 찾아내어 202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자료로 지정한 바가 있다. 이번에 찾은『이양편(二養編)』은 9권 3책으로 구성된 책으로 현재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 영천역사박물관 4곳 정도에서만 완질본을 소장하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이것으로 영천시는 조선 1620년과 1654년에 영천군에서 간행한 지역 한방(韓方) 관련 2종의 역사적인 문헌 원형을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한방도시로서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양편(二養篇)』은 조선시대 양생(養生)·운기(運氣)·섭생(攝生)에 관하여 1613년에 제작한 의서로 저자는 치재 조탁(恥齋 曺倬, 1552~1621, 참판)이다. 이 의서(醫書)는 의학전문치료서가 아니고 주로 양생(養生)·운기(運氣)·섭생(攝生)을 다룬 도가(道家) 의서로서, 저자의 호가 이양당(二養堂)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일반적으로 16⋅17세기 조선 사회는 도학(道學)정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성리학의 정립기라고 한다. 심성 수양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분출하는 시기였고, 성리학의 한국적 전개 못지않게 심신수련에 대한 관심이 역사적으로 매우 지대한 시기였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을 통하여 보면 조탁(曺倬)의『이양편(二養篇)』은 의서로서 돋보이는 책이다.저자 조탁(曺倬)은 조선 명종(明宗) 1552년에 출생하여 광해군 13년(1621년)에 세상을 떠난 인물로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호를 치재(恥齊) 또는 이양당(二養堂)이라 하였으며 선조 21년(1588년)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해서 관직에 나섰으며 공조 · 형조의 참판 등을 지내고 사후(死後)에 영의정에 추증(追贈)되었다.선조 41년(1608년)에 강릉부사가 되어 공무의 여가에 옛날 읽은 책 및 경전(經傳)과 문집에서 정리한 뒤 입교(立敎), 명륜(明倫), 격치(格致), 성정(誠正), 수재(修齊), 치평(治平)의 순으로 6편이 목차를 만들고 양심(養心)이라는 서명을 붙여서 상편(上篇)으로 책을 만들었다. 또 치망(恥忘), 치순(恥徇), 무치(無恥)의 3편을 만들고 양생(養生)이라는 서명을 붙여서 하편(下篇)으로 삼은 뒤 이 둘을 합칭하여 『이양편二養編』이라 하였다.‘二養’은 몸을 기르는 양생(養生)과 마음을 기르는 양심(養心)의 ‘二養’을 뜻하는 것으로. 조탁(曺倬)은『二養編』의 서문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잊고 욕망을 따르는 것(忘生徇欲)’을 부끄러움으로 여긴다고 한 구절에서 착안하여 “망생순욕(忘生徇欲)의 교훈을 통하여 양심(養心)⋅양생(養生)의 약석(藥石)으로 삼는다.”고 서문에 기록하고 있다. 내가 젊어서 안으로 어려움을 당해 일찍부터 병에 걸렸다. 항상 신체를 잘 기르지 못하고 심신을 수련하지 못해 즐겁게 살아갈 수 없었다. 병중에『心經』을 읽는데, 정이천(程伊川) 선생이 말한 바 “나는 생을 잊고 욕망을 따른 것을 부끄러움으로 여긴다”고 한 곳에서 곧 스스로 놀라 마음에 느끼는 것이 있었다. 그로부터 간절히 생각하고 생각하기를 ‘忘生徇欲’ 네 글자가 養心養生의 藥石이 충분히 될 것이라 여겼다.결국『이양편(二養編)』의 편찬 의도는 양생(養生)과 양심(養心)을 통한 인간 도덕의 주체적 확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양편(二養編)』편찬의 또 다른 목적은 효(孝)에 있다고 할 수 있다.조탁(曺倬)은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를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다”라고 하였고, 증자(曾子)는 “몸이라는 것은 부모가 남긴 몸인 즉 나의 몸은 곧 부모의 몸이다”라 말씀하셨다. 자식으로써 부모의 몸을 받아 내 몸이 된 즉 가히 보호하고 섭양할 방도를 생각지 않겠는가? 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서 보면 이는 전통적인 유가의 도덕적 덕목인 효(孝)를 유학, 도교와 의학이 상호 유기적인 관련을 맺은 삼자의 회통적 구조 속에서 성립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사상적 배경의 이면에는 16⋅17세기 유학자들의 심신수련 이론에 관한 관심이 있었다.기록에 의하면 1620년 영천군 관아 공방의 목판 제작자인 각수(刻手)를 동원해 만든 한방 심신수련서이자 마음을 치료하는 한방 호흡법이 수록된 『이양편(二養編)』은 동의 한의마을과 한방관련 사업에도 활력을 불러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영천역사박물관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후기 영천군 관아에서 간행한 10종의 관판본을 찾아내어 소장하고 있다. 영천 관판본을 살펴보면 ①1607년 영천군수 황여일이 간행한『포은선생문집(圃隱先生文集)』, ②1620년 영천군수 조명욱이 간행한『이양편(二養編)』, ③1628년 영천군수 박안효가 간행한『계축사마방목』, ④1641년(인조 19) 영천군에서 개간한『삼운통고』, ⑤1649년(인조 27) 영천군수 김백간이 개간한『결송유취』, ⑥1654년 영천군수 이구가 개간한『수민방(壽民方)』, ⑦1677년(숙종 3) 영천군수 이만봉이 중간(重刊)한『포은집』, ⑧병술년 영천군이 개간한『첩산선생비점문장궤범』, ⑨1866년 영천군수 정원필이 개간한『포은선생문집(圃隱先生文集)』, ⑩1879년 영천군수 이학래가 개간한『파곡유고(坡谷遺稿)』이다. 또한 영천의 개인과 문중, 사찰에서 간행하거나 필사한 서지류는 약1,200종 18,000여점이 소장되어 있어 지역 역사문화의 보물 창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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