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겨울 해는 짧다. 도시라면 불빛이 하나씩 둘씩 켜지는 저녁을 하루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을 테지만 농촌에서는 해가 서편으로 기웃해지기가 무섭게 벌써 하루를 마감하는 마음이 바빠진다. 마음이 바빠질 뿐 할일이 많은 것은 아니다.캄캄해지기 전에 저녁 식사 준비를 끝내고는 문단속을 한다. 이제 더 이상 나갈 일이 없고 찾아올 손님도 없기 때문이다. 저녁식사를 간소하게 끝내고 나면 이미 바깥은 칠흑처럼 어두워져 있다. 내가 시골에 처음 내려왔다면 분명 무서워했을지 모른다. 서울에 도로 올라가 살겠다고. 짐 싸들고 가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3년전 남편의 직장 때문에 전라도 능주에서 12년 살아본 경험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그때도 자동차 운전을 하고 다녔는데 주변 광주나 나주 혁신 도시 친구들과 저녁 모임을 가진 후 돌아올 때면 능주 집까지의 찻길은 가로등도 없이, 다른 차도 거의 없이, 다만 캄캄할 뿐이었다. 이곳에 내려와서는 다행이랄까. 집으로 들어오는 5분정도의 마을 안길만 어두울 뿐 큰길에는 가로등도 있고 차량도 적지않다.하지만 어두울 때 집 밖으로 내가 운전해 나가본 적은 아직 없다. 주변 중소 도시에 사는 친구를 사귈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모임이 있다고 해도 저녁에 만나는 경우라면 내가 출석하는 일이 많을까? 밤이 되면 모든 것이 까매지고 흐릿한 가로등 한 두개가 길을 밝힐 뿐인 시골의 정적을 거스른 채 자동차 엔진 소리를 내며 들어올 수 있을까?어느새 해가 지면 다음날의 아침 해가 떠오르기만을 기다리는 소심한 시골 사람이 되어 버렸나 보다. 그런 변화가 싫지만은 않다. 아직도 캄감한 어둠에 익숙하진 않고 가끔 무섭기도 하지만, 자연의 변화에 나를 맡기는 생활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생각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신 긴 밤을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보낸다. 거실에 나란히 놓여있는 컴퓨터 앞에서 남편과 함께 글을 쓰거나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안방에 들어가서 책이나 TV를 본다. 아니면 서로가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2018년 새해를 보낼 계획으로 꽉 찬 머리를 가슴으로 풀어 내리기도 한다.아침에는 태양보다 조금 일찍 자리에서 눈을 떠야 한다. 그래야 동북 창으로 스며들어오는 어슴프레한 유년의 아침 햇살을 영접할 수 있다.밤새 기다렸던 햇님이다.나의 오늘 하루을 책임져 줄 햇님이다.지구의 모든 생물체들이 기다렸던 햇님이다.도시에서는 존재를 크게 느끼지 못했던 햇님이다.“오늘이라는 이름의 햇님이 성장하고 소멸하는 그 시간을 내가 즐기고 울고 웃으면서 같이 보낼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해가 조금 더 올라오자 스피커에서 30여 호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공지 사항이 울려 퍼진다.“오늘은 가래실 댁의 팔순 잔치가 있으니 회원 여러분들께서는 11시 30분까지 회관 앞으로 나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농촌 지역에서는 마을에 알릴 일이 있으면 하루 이틀 전부터 아침저녁 두 차례씩 방송을 한다. 아! 어제 만난 분이 가래실 댁이구나. 여자가 보통 친정집의 택호로 불리는 이곳에서 나는 서울 댁이다.“내일 모두 점심 먹으러 가는데 서울 댁도 꼭 나올 거지?”아!그게 생신 잔치 말씀이었구나.아침, 집을 치운 후에 나는 공들여 예쁘게 치장을 한다. 할머니들과 똑같은 방향으로 목도리도 맨다. 서울서 사온 고운 색깔 봉투에 축의금도 넣는다. 이렇게 시골 사람이 되어 간다. 햇님만 바라보다 목에 주름이 깊이 패이는 할머니가 되어간다. 그래도 햇님이 좋다.햇님, 평생을 기다렸어요! 오늘또 만나서 기뻐요!(2018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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