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이 날짜의 나열된 ‘1’들을 볼 때마다, 대중의 시선은 길쭉한 막대 과자로 향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한쪽에서는 이 네 개의 ‘1’을 병풍처럼 세워진 서가에 꽂힌 ‘책(冊)’의 형상으로, 그리고 책을 찾아 줄지어 들어서는 사람들의 행렬로 읽어냅니다. 이날은 바로 ‘서점의 날’입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2016년, 위기에 놓인 지역 서점과 서점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제정한 이 날은,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묵직한 질문 하나 던집니다. “우리는 왜 여전히 서점을 필요로 하는가?”2000년대 초반부터 서점들은 거대한 온라인 파도 앞에 위태로웠습니다. 당시 지방의 서점들은 ‘재고 관리의 비효율’, ‘할인 경쟁의 열세’라는 비명과 함께 쓸쓸히 문을 닫았습니다. 수천 권의 책으로 가득했던 동네 서점들이 하나둘씩 부동산 광고판으로 변할 때,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넘어, ‘무엇이든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우연의 공간’이 해체되는 것을 봤습니다.온라인 서점이 ‘내가 원하는 책’을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제공하는 효율의 장이라면, 오프라인 서점, 특히 지역 서점은 ‘내가 몰랐던, 그러나 나에게 필요했던 책’을 만나게 해주는 발견의 미로입니다. 오랜 동안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여전히 어떤 기획의 실마리를 찾을 때 대형 포털이 아닌, 서점의 익숙한 종이 냄새를 먼저 찾곤 했습니다. 손가락이 닿는 책등의 질감, 무심코 넘긴 페이지에서 튀어나오는 문장, 그리고 책장 사이를 거닐며 사색하는 그 시간 자체가 디지털 미디어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복고적인 경험이기 때문입니다.현재 수도권의 서점들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며 스스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북카페형 서점, 독립 출판물만을 전문으로 큐레이션하는 독립 서점, 심지어 맥주를 파는 서점까지 등장했답니다. 이들은 각자의 개성 있는 취향과 가치관을 책장으로 펼쳐 보이며 독자들과 교감하는 문화적 사랑방이 되고 있습니다. 독서 모임, 작가와의 만남, 작은 전시회 등 서점이 주최하는 프로그램들은 독자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위기는 여전합니다. 한국 성인의 독서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미디어 환경은 갈수록 동영상 콘텐츠(OTT)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대형 온라인 서점과의 가격 경쟁에서부터 무엇보다 이제는 ‘책이 꼭 종이여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서점은 매일 생존을 고민해야 합니다.이제 서점의 날을 맞아, 우리는 서점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서점은 단순히 책이 거래되는 상업 공간이 아니라, 지역의 지성과 감성이 만나는 공공재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서점을 지키는 노력은 서점인만의 몫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그래서 영천시가 추진한 ‘지역서점 책값돌려주기’ 정책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사업은 영천시민이 지역 서점에서 책을 구매한 뒤 읽고, 도서관에 반납하면 책값의 약 70%를 돌려주는 정책입니다. 그러니 이 예산은 삭감되어서는 안 될 ‘문화 투자’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독자들 역시 습관적으로 온라인을 클릭하기 전, 동네 서점을 방문해 보는 작은 실천을 통해 그 가치에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11월 11일, 서점의 날. 낱낱이 흩어진 우리의 지적 호기심과 공동체적 유대감이 서가에 꽂힌 ‘책’처럼 정갈하게, 그리고 ‘사람들의 행렬’처럼 끈끈하게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서점이 사라진 도시는 기억과 사색이 없는 황폐한 곳일 뿐입니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서점이라는 미로 속으로 기꺼이 발을 들여야 합니다. 서점은 우리의 생각과 영혼이 길을 잃었을 때, 곁을 내주는 가장 고요하고 확실한 이정표가 됩니다. 오는 11일에는 꼭 지역 서점에 나들이 한번 하실 것을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