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가을 장마가 물러간 자리에는 농민들의 시름만 남았다. 지난 10월은 한달내내 우리 지역 농촌은 계속되는 장마에 노심초사, 고통의 시간이었다. 어디에나 마찬가지겠지만 농촌에서 만난 농민들의 주름진 손과 구부정한 허리,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는 이 땅의 역사가 새겨 있다. 하지만 올해 가을, 우울한 그들의 표정에서 배어나오는 깊은 시름에 우리의 마음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10월 중순까지 보름 넘게 이어진 가을 장마에 일부 지역의 160mm 가까운 누적 강우량은 단순한 이상기후가 아니었다. 이 시기에 마늘 파종률을 절반으로 깎아버렸고, 탐스럽던 사과에 열과라는 상처를 남겼으며, 황금빛이어야 할 들녘을 갈색으로 변하게 했다. ‘수발아’라는 낯선 농업 용어가 일상이 되어버린 농촌의 현실은 참담하다.“올해는 다 틀렸어요”라는 농민의 절규 같은 한숨이 내내 귓가에 맴돈다. 수확의 기쁨이 넘쳐야 할 계절에 절망이 가득한 농촌의 풍경을 보며 묻는다. 과연 우리 농업에 희망은 남아있는가.하지만 우리 농업의 저력은 바로 역경을 이겨내는 불굴의 의지에 있다. 2020년 역대 최장 장마 때도, 2018년 살인적인 폭염 때도, 그리고 그 이전 수많은 자연재해의 순간에도 농민들은 결코 땅을 등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진흙탕 논에서도 맨발로 농사짓고, 젖은 밭에서 온종일 땀 흘리며 옷이 다 젖어도 묵묵히 일손을 놓지 않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이 바로 농업의 진짜 저력이요, 불굴의 우리 농심이었다.지금 농가 앞에 놓인 숫자들은 냉혹하다. 마늘 파종률 감소, 사과 생산량 하락 예상, 벼 수확량 감소 등. 하지만 오랜 세월 농촌을 지켜보며 깨달은 진리가 있다. 숫자가 농업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오히려 위기 뒤에는 언제나 새로운 기회가 숨어 있다.이제 기후위기는 이제 일회성 재난이 아니라, 우리 농업의 상수가 되었다. 그렇다면 대응 방식도 이제 달라져야 하겠다. 올해의 피해를 단순히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내년과 그 이후를 준비하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농민들에게 권장할 것은 배수로 정비부터 다시 시작하고, 기상 이변에 강한 품종을 선택과, 파종 시기를 조정하는 전략적 접근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 농협과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기후변화 대응 영농 컨설팅을 적극 활용하고, 이제 재해보험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농협과 지자체의 역할도 절실하다. 피해 보상금 지급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영농 재개 지원, 맞춤형 기술 컨설팅, 그리고 선제적인 재해 예방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농민들이 위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농민 스스로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1,466호의 마늘 재배 농가, 그리고 수많은 과수와 벼 농가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정보를 공유하고,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서로 돕는 농촌 공동체의 힘이야말로 이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일 것이다.농촌을 지켜보며 결코 농사는 한 해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과 그것은 수십 년을 이어온 우리의 역사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미래라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맑아진 하늘을 보며 농기계를 점검하고, 수확 시기를 저울질하는 농민들께 말하고 싶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마시라고. 수확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거둬들이시라고. 파종할 시간이 남아있다면 끝까지 흙 속에 희망의 씨앗을 심으시라고.‘흙은 거짓말하지 않고 땀 흘린 만큼 돌려 준다’는 그 말이 지금도 진리다. 올해의 역경이 분명 혹독했지만 이 경험은 우리 농업을 더 강하게, 더 준비된 시스템으로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 농업의 미래는 멈추지 않고 흙을 일구는 ‘농심’과 함께 계속될 것이며, 그들의 땀과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씨앗은 결국 대한민국과 지역 농업의 튼튼한 뿌리가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