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의진역사」는 1946년 발간되었다. 따라서 글의 문체나 인용된 고사의 내용들이 고문에 가까운데, 마침 4년 전 간행한 「역주 산남의진역사」는 정재진 선생께서 상세한 각주를 붙여 설명하고 있는지라 그나마 읽기가 쉽다. 물론 이 열전의 창의지 부분은 「역주 산남의진역사」를 가져온 것이다. 논공행상에 대한 각주를 통해 중국의 옛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김경문관향은 상세하지 않다. 평소 경문은 광석을 캐는 광부(鑛夫)여서 성품이 과격하였다. 의진에 들어온 초기에 우재룡과 사사로운 이유로 서로 다투고 마음속으로 늘 재룡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었다. 한번은 논공행상(論功行賞)1)을 하게 되었는데 우재룡이 힘써 김경문의 공적을 말하여 경문이 상(賞)을 받게 되자 비로소 김경문은 큰일에는 가히 사사로운 혐의로 상대방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재룡에게 사과하였다. 그 이후부터 경문은 지난날보다 곱절이나 노력하여 자못 명성과 칭송이 자자하였으나 그 전말(顚末)은 상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다.〈원문〉金景文은 貫鄕不詳이요 素是採鑛夫라 性果敢하다 入陣之初에 與禹在龍으로 私爭하고 心常含寃이러니 至論功行賞之日에 在龍이 力說景文之功하고 登賞之하니 景文이 始覺大事에 不可私嫌으로 害之하고 深謝在龍而自是以後로 倍前盡力하야 頗有名稱이러니 顚末不詳이라<山南倡義誌 卷下62p>金景文 義士 略歷(김경문 의사 약력)金景文(김경문)은 관향과 출신지는 미상이라 본래 兵丁(병정)으로서 東广先生(동엄선생)의 명령을 받고 서울서 영남으로 내려와서 八公山(팔공산) 유격대에까지 활약하였고 전말미상이라 <山南義陣遺史478p>김은집관향과 살던 곳이 분명하지 않다. 평소 병정으로 청송의병진의 연습장이 되었고 일이 실패한 이후로 전말(顚末)이 상세하지 않다.〈원문〉金銀集은 貫鄕及居所不詳이라 素以兵丁으로 爲靑松陣鍊習將하고 事敗後顚末不詳이라<山南倡義誌 卷下62p>金銀集 義士 略歷(김은집 의사 약력)金銀集(김은집)은 관향과 거소는 미상이라 본래 兵丁(병정)으로서 입진하여 靑松東部陣(청송동부진)에 練習將(연습장)까지 하였고 그 후는 불상이라 <山南義陣遺史478p>남규철자는 덕우이고 본관은 영양으로 운강공의 후손이다. 영덕으로부터 돌아온 일가 남석구를 따라서 다시 청송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끝내 일이 이루지 못하자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만주로 건너갔다.〈원문〉南圭喆은 字德禹요 英陽人雲崗公后라 自盈德으로 歸從族人錫球하야 復起於本鄕이라가 事竟不濟하고 率妻子渡滿洲하다<山南倡義誌 卷下62p>南圭喆 義士 略歷(남규철 의사 약력)南圭喆(남규철)은 字(자)는 德禹(덕우)요 관향은 英陽(영양)이라 山南義陣(산남의진) 본진에 종사하다가 盈德(영덕) 敗後(패후)에 본군에 돌아와서 西部陣(서부진)을 도우다가 滿洲(만주)로 移居(이거)하다 <山南義陣遺史4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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