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구리(1)연전에 길을 헤매다가, 우연히 찾아 들어간 그곳이 고원분지에 형성된 산촌 ‘두마리’입니다. 두마폭포와 무학대가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는 생각에 인연의 떨림은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그러다가 오직 두마리를 배경으로, 존재하지 않는 어느 시대로 옮겨가면서, 고립되었지만 단단한 왕국이 존재했을 거라는 가정 하에 소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1항시 엄격한 규율이 있다면 계절변화를 축으로 사방팔방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수긍의 깍듯한 자세가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순환 고리를 제공하고 그에 걸맞은 흐름이 지나치지 않게, 종(種)으로 이어져 묵묵히 산천이 기본 값을 한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었다. 어제 푸른 산천이 오늘도 푸른 이유는 저마다 소임을 다하기 위한 임무에서 시작되었다. 철마다 찾아오는 철새도 비껴갈 수 없는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깊고 험한 산을 탓하지 않았다. 먼 하늘과 가까운 하늘이 날갯짓의 범주 안에 납작 들어와 있기 때문이었다. 산새를 자랑하는 보현산은 햇빛과 별빛이 매년 수북하게 쌓인 낙엽 곁에 뒹굴었다. 뻐꾸기, 부엉이, 꾀꼬리, 딱따구리의 울음을 가려내다 보면 보현산 자락에는 단풍과 초록이 물든 채로 다녀갔고 칡넝쿨이 아등바등 나무둥치를 타고 기생하며 뻗었다. 첩첩을 자랑하는 산은 곧 울타리며 성벽 역할을 충실히 했다. 따라서 세상과 단절되어도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천연요새였고, 고립된 왕국의 시작이었다. 바깥세상에 동요됨 없이 꼬장꼬장 버틴다는 것은 완전한 개체로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 두마국(國)은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절대권좌 합하(閤下)를 위상으로 신라, 백제, 고구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신라의 부속으로 ‘기껏해야 고작’으로 치부하겠지만 두마국 백성들은 근거 없는 자존감으로 한 나라의 중요 구성원이라는 사실에 더 비중을 두었다. 몇 번 신라의 궁중 제반 업무를 관장하는 관부에서 힘들게 찾아와 세금을 요구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돌려보냈다. 머리 뒤꼭지를 향해,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가는 것만으로 감사한줄 알아라.’는 일갈을 안겨 주었다. 관부에서 움직인 것은 그만큼 골머리를 썩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어느 대신은 난봉꾼쯤으로 열외를 시키자고 건의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항복을 받기위해 군사를 이끌고 출구가 하나뿐인 협곡으로 쳐들어오기엔 지형지물에서 이미 한수 접어야하는 불리함을 갖췄다는 것이다. 저녁노을을 출렁거리게 하는 보현산 뒷배를 타고 늦가을이 숨 막히도록 여물어지고 있었다. 곳곳에 겨우내 버틸 땔감을 확보하기 위해 톱질과 도끼질이 시작되고 뱃속은 주린 배가 되었다. 금방 잡은 뱀 껍질을 벗겨 영역표시처럼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핏물이 맺힌 살점을 이빨로 사납게 뜯어내었다. 허기만큼 견딜 재량은 없었다. 본능적인 일탈뿐이었다. 칡뿌리를 캐서 우둑우둑 즙을 빨아먹으며, 현란한 버섯을 피해 온순한 색을 뛴 버섯으로 입가심을 했다. 한 겹 한 겹 자리를 잡은 낙엽더미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기상천외한 먹거리의 풍성함을 두마국이기에 고마워했다. 간신히 하나로 명맥을 유지하는 절간에서 저녁예불 범종소리가 온 일대를 뒤덮고 하나 둘 산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저마다 땔감을 지게에 지거나, 머리에 이거나, 한쪽 어깨에 걸치거나 행렬은 당산나무 근처로 집결하고 있었다. 두마폭포에서 물줄기가 분홍빛으로 갈아탔다. 하루치의 시간이 땅거미 속에서 서서히 마무리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