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인이라면 임진왜란 초기 1592년 음력 7월 27일(양력 9월 2일)에 일어난 영천성수복전투에 대해 대부분 알고 있다. 문헌적으로는 『조선왕조실록』「선조실록」에는 “영천성수복전투는 이순신의 공로와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하나의 기록으로는 임진왜란 시기 병조판서, 지금의 국방부 장관을 4번이나 역임한 백사 이항복은 자신의 문집에서 “영천성수복전투와 명량해전이 가장 장쾌한 전투다.”라고 기록했다.왜 이순신과 명량해전과 비교될 만큼 평가가 되었는지 대한 연구는 미흡했다. 한 걸음 이 사건으로 더 들어가 보면 첫 번째는 국왕의 귄위에 대한 회복이다. 읍성이 국왕을 상징하는 주된 이유는 읍성 내 핵심 시설인 객사(客舍)에 국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와 궐패(闕牌)를 모시고 예를 올렸기 때문이다. 읍성은 단순히 지방 주민을 보호하는 방어 시설을 넘어, 객사에 모신 전패와 궐패를 통해 국왕의 절대적인 권위와 중앙 집권적인 통치 이념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을 영천이 최초로 회복한 곳으로 각인이 되었다.두 번째 이유는 중국 명나라에 보낸 공식 문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선조실록」30권 선조25년(1592)년 09월 15일 기록에 왜적과의 전투 내용을 담은 조선시대 중국과의 사이에 외교적인 교섭이나 통보, 조회할 일이 있을 때에 주고받던 공식적인 외교문서인 자문(咨文)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당시에 영천성전투에서 일본군의 목, 517과를 짤라 요동에 머물고 있는 중국 명나라 군이 속히 와주기를 바라는 뜻으로 보낸 것으로 속히 참전하게 된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개의 이유가 명량과 비교될 만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미리 예견된 이 전쟁은 시작되기 2년 전부터 활동한 영천의 인물로는 창녕 조씨 집안의 조덕기와 오천 정씨 집안의 정세아다. 그들의 활동은 경주에서부터 시작된다. 1590년 3월 20일 최홍국(崔弘國), 김인제(金仁濟), 조덕기(曺德驥, 1537~)1), 정세아(鄭世雅,1535~1612), 정삼고(鄭三顧), 류정(柳汀,1537~1597) 등은 심상치 않은 국내 사정과 일본의 정황을 서로 교류하며 변란에 대비할 방도에 대한 대책을 모여 강구한 것으로 나타난다. 4개월 뒤, 1590년 7월 15일 조덕기·정세아는 함께 경주지역과 경북의 여러 인사들이 다시 만나 국내와 일본과의 여러 긴박한 상황을 논의한 것을『송호유집』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송호유집』에 풍계(楓溪) 조덕기가 지은 시 몇 수가 남아 있어 당시 조덕기의 심경을 만나 볼 수 있다.之子何必妻善山於今難得一身間生花易繫能千讀報國神籌在此間   그대 어찌 꼭 푸른 산에 살려고 하는가지금은 일신의 한가로움 얻기는 어려운 때꽃이 핀 「계사」를 천 번이나 읽었으니나라에 바칠 묘책이 그 사이에 있으리라 1590년 7월 28일 치술령(鵄述嶺)에 올라가 일본 대마도를 바라보며, 조덕기는 직접 한 수를 읊었다. 磨劍石頭問樂年堂堂忠孝己通天讀兵半夜神書授三國乾神節義全돌머리에 칼을 간 것이 몇 년이던가   당당한 충효는 이미 하늘에 통하였네  한밤중에 신령이 준 병서를 읽어      삼국의 천지에서 절의 완전하였네     치술령은 경주시 외동읍에 위치한 고개로 눌지 마립간(訥祗 麻立干, ? ~ 458년) 때 박제상이 눌지왕의 동생을 구하러 일본으로 떠나자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일본이 보이는 치술령으로 올라갔다가 몸이 굳어 그 자리에서 굳어 바위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 바위를 남편이 그리워 하는 바위라고 하여 망부석(望夫石)이라고 부르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이곳에서 일본의 침략을 걱정하면서 조덕기와 정세아는 여러 지역의 의사들과 함께 전쟁에 대해 준비하고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이후에도 1590년 8월 초하루 불국사 범영루에서 적은 시 등 여러 편에서 조덕기와 정세아의 구국에 대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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