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0만. 불과 몇해 전만 해도 영천시의 사활이 걸린 숫자였다. 10만을 지키기 위해 온갖 안간힘을 다했고, 그 선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패배감에 휩싸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은 많이 무감각해졌다. 10만이 무너지자 관심도 함께 사라진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애초에 잘못된 전쟁을 치르고 있었는지 모른다.출산 장려금, 신혼부부 지원, 일자리 창출 사업. 하나같이 성의 있고 필요한 정책들이었지만, 인구 곡선은 완고했다. 이제 솔직해질 때가 됐다. 수도권 집중과 저출산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지방 도시가 인구 증가를 목표로 삼는 것은 언덕을 오르는 게 아니라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손을 놓고 쇠퇴를 기다려야 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영천이 새로운 도시 모델을 실험할 절호의 기회다. 인구 감소를 위기가 아닌 전환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키워드는 ‘축소사회’다.축소사회는 쪼그라드는 사회가 아니다. 덜 가지면서도 더 잘 사는 사회, 양이 아닌 질로 경쟁하는 도시를 말한다. 독일의 슈링크 시티 정책은 빈 건물을 철거하고 녹지로 바꾸면서 도시를 재생했다. 인구가 줄어도 도시는 더 매력적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증거다.영천에 필요한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먼저 확장 일변도의 개발을 멈추고 기존 시가지를 압축적으로 재생하는 것이다. 빈 상가와 공가를 공동체 거점으로 전환해야 한다. 넓게 퍼진 도시보다 촘촘한 도시가 에너지 효율도 높고 주민 간 관계도 밀도 있게 만든다.둘째, 예산 구조를 효율화해야 한다. 대형 개발 사업보다 기초 생활 인프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노인 돌봄, 의료 접근성, 소규모 문화시설 등 삶의 질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영역에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젊은이들은 돈 몇 푼에 아이를 낳지 않는다. 하지만 살기 좋은 곳이라면 떠나지 않는다.셋째, 관계 중심의 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 인구가 적다는 것은 서로의 얼굴을 잘 아는 사회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익명의 대도시가 아니라 이름을 부르는 소도시의 장점을 극대화해야 한다. 마을 단위 자치 조직, 세대 간 돌봄 네트워크, 로컬 생태계 등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인구 감소 대응에 성공한 도시와 실패한 도시의 차이는 명확하다. 성공한 도시는 현실을 인정하고 전략을 바꿨다. 실패한 도시는 낡은 지표에 매달리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영천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우리는 더 이상 10만이니 20만이니 하는 숫자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숫자의 회복이 아니라 공동체의 회복이다. 작지만 단단하고, 느리지만 지속가능하며, 적지만 품격 있는 도시. 그것이 영천이 그려야 할 미래다. 축소사회는 퇴보가 아니라 성숙이며, 포기가 아니라 재설계다. 그렇다고 무방비 상태로 놔두라는 뜻이 아니다. 인구 유입정책은 그대로 실행하면서 줄어드는 인구에 대한 방안을 강구하자는 말이다. 인구 감소라는 시대적 흐름을 지역 재창조의 모티브로 삼을 때, 비로소 새로운 발전의 출발선에 설 수 있을 것이다.